[몸의 예술, 퍼포먼스의 어제와 오늘]

온 몸을 불사르며 몸짓으로 말하는 행위예술, 퍼포먼스.

이는 상징성, 이미지 전달이란 차원에서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예술보다 호소력 짙게 다가오곤 한다. 퍼포먼스의 태생이 갖는 저항적 속성 때문일까. 퍼포먼스는 우리의 시대정신과 늘 함께 해 왔다. 때로는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시위현장에서, 때로는 축제의 포문을 여는 마당 한가운데서 수많은 몸짓의 언어들은 긴 실타래로 이어져 왔다. 이달 말까지 국내 퍼포먼스의 30년 역사를 조명하는 ‘2002 한국실험예술제’가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주최로 홍익대 일대에서 열린다. 이를 계기로 그 퍼포먼스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해 보기로 한다. 특히 여기서는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움직임에 주목해 봤다. <편집자 주>

~3-1.jpg

▶퍼포먼스 아티스트들

3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퍼포먼스는 대략 4시기로 나뉜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사회 비판적 시각과 시위적 성격이 강한 1세대, 80년대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퍼포먼스의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2세대,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 속에 개인의 내면과 신체 탐색에 집중한 3세대,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식과 장르의 결합이 두드러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퍼포먼스의 흐름은 역동적으로 지속돼 왔다. 국내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시도된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 그리고 여성 퍼포머인 정강자 씨가 벌인 ‘투명 풍선과 누드’를 우리나라 최초의 퍼포먼스로 보고 있다.

3세대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등장

특징적인 것은 개인의 내면이나 신체에 대한 탐구가 경향을 이루는 3세대에 이르러 여성작가들의 등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백기 한국실험예술제 운영위원장은 “퍼포먼스를 하는 여성작가들이 별로 없었다.

용감해야 하는 예술인데 여성들이 나서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즈음 이불을 비롯해 이윰 등 3세대와 4세대에 걸쳐 여성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는 퍼포먼스가 정치성, 사회성에 대한 관심이나 관여가 많았고 저항적 작업이 주를 이뤘다면 90년대 이후 개인의 내면세계나 감성에 주목하는 작업들이 많아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여성작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이는 90년대 이후 떠오른 몸에 대한 담론 속에 여성들의 신체와 정체성 문제가 활발하게 대두됐던 사회적 분위기와 맥을 함께 한다. 90년대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 등장한 신체담론은 여성의 몸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가능케 했고 많은 여성 예술가들은 그야말로 남성중심사회 속에서 ‘전쟁터’로 존재하는 여성의 몸, 즉 자신의 몸을 주제로 또 표현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탐색작업을 진행했다. 이불의 경우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 완전 누드의 상태로 거꾸로 매달려 낙태의 고통을 연출한 <낙태>(1989) 등의 작품을 통해 임신과 출산에 관계된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다.

김홍희(쌈지스페이스 관장·홍익대 우대겸임교수) 씨는 90년대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등장 배경에 대해 “90년대부터 신체담론이 정체성 문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과거 정신과 신체의 이분법 속에서 신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 하위의 개념으로 인식돼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면 90년대 이후 신체담론에서는 신체 자체가 정체성이나 심리를 대변하게 됐다. 몸 자체가 정체성의 현장을 담보하는 중요한 기본요소로 어필된 것이다. 신체를 고매하고 흠 없는 이상화된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신체의 물질적 요소, 분비물 배설물까지 본질로 생각하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에 비천한 몸, 열등한 몸으로 인식됐던 여성의 몸과 정체성이 부각됐고 이는 자연히 페미니즘과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몸과 정체성에 대한 접근

이는 기존 퍼포먼스, ‘해프닝’으로 불리던 1세대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작업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90년대 이후 행위를 실천하는 여성의 신체 자체가 중요한 의미망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홍희 씨는 “1세대 여성 퍼포먼스 작가 정강자의 경우 액션(행동) 자체가 강조된 해프닝에 가깝다. 즉 예술의 표현방식을 액션 자체로 대체하는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3세대를 넘어서는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경우 액션하는 주체인 신체에 방점이 가게 됐다. 즉 액션으로부터 액션하는 행위자의 신체로 전환된 것이다. 따라서 신체를 강조하는 퍼포먼스에서 여성의 신체가 주요한 이슈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윰과 이불 등 3세대를 거쳐 4세대에 접어든 현재에도 김미경, 김은미 등 여성작가들의 활발한 작품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성이 주요한 특성으로 부각되는 현 추세에서는 신체 뿐 아니라 오브제(물체)의 다양한 활용과 장르의 다양한 결합 등 형식적인 다양성과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퍼포먼스라고 하면 ‘난해하고 기괴한 무엇’이라는 지배적인 통념 속에서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이번 실험예술제 운영위원장 김백기 씨는 “사실 여성 퍼포먼스 작가들의 지반이 아직은 탄탄하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퍼포먼스 자체의 역사가 길지 않고 이론정립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은 어찌 보면 혼란기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퍼포먼스나 실험예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이 정민 기자 knnif@womennews.co.kr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