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행복에 조건은 없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서 고대하시던 TV프로그램이 있었다. MBC와 후지TV가 공동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 <여성, 일과 사랑>으로 어머니가 특히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과 육아의 병행문제를 다룬 2부 ‘행복의 조건’이었다.

어머니는 딸들도 같이 보기를 바라셨지만 잠 많은 나는 TV앞에서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그 직전 바라본 TV화면에서는 아침마다 시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출근하는 여성의 마음 찌릿한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말도 좀 들어요, 나이 드신 시부모님 고생시킨다고. 그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기분 상한다기보다는 죄송스럽죠”.

그런데 다음날 어머니는 그 프로그램에 불만이 있으신 듯했다. 무엇 때문인 걸까. 나는 MBC 홈페이지에 접속해 ‘다시보기’ 버튼을 눌렀다.

일본여성과 한국여성의 삶을 함께 다루는 다큐멘터리였다. 씩씩하고 열정 넘치는 한국여성들이 이웃 일본에 비해 훨씬 부족한 사회적 지원 속에서 말 그대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눈에 생생히 들어왔다. 한국이라는 땅에서 우리네 여성들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며 그 고단한 통계치와 인터뷰들을 따라갔다.

그래서 나는 2부의 제목 ‘행복의 조건’이 여성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 의미인 줄 알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조금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화면은 뜬금없이 재일 한국여성이 김치요리를 이웃 일본여성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여성의 행복이 무엇이겠냐는 질문이 그 장소의 일본여성들에게 던져졌다. 그녀들은 건강이니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이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밥상에 둘러앉은 모습을 잡은 화면에서 인터뷰를 정리하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녀들이 말한 행복에는 행복의 조건이 없었다. 그저 충만한 행복감만이 있을 뿐이다.”

에?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더니 또 엉뚱한 인터뷰가 나온다. “남편, 가족, 이웃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진정 행복한 거죠. 행복이란 내 마음속에 있어요. 가까운 곳에 있는 파랑새 같은 거죠.”

어어, 하며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우리 모두 잘 살아보세 분위기로 급하게 내레이션이 매듭지어지고 어느새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틈바구니에서 억척스레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준 후 ‘행복은 가까운 데 있고 행복의 조건 따윈 없다’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다니. 일을 가지려고 그리 애쓸 필요 없다, 여자가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세상에 불만 갖지 말고 가까운 곳에 있는 소소한 행복에나 만족하라는 제스처인가. 나는 설마, 설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보고야 말았다. 그 곳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일본의 제작진에게 한국여성들을 만나본 소감을 물었더니… (생략) 20대, 30대, 40대의 모든 여성들이 오직 ‘일’을 행복의 조건으로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은 더욱 놀랍다고 했다. 일본의 여성들은 단순히 취업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고 그것이 다양한 삶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일본여성에게 있어 ‘일’이 행복의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점은 오직 일을 통해 행복을 구현하려는 한국여성들에게 있어 양국간 상호 큰 대비를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오, 어설픈 훈계라던 어머니의 눈은 정확했다. 일하려고 ‘설치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면 거슬린다고 솔직히 말할 것인지 왜 이런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가.

홍문 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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