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위한 사건공개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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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선 거짓이 아닌 ‘사실’을 공공연히 알리거나 적시한 경우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지만 우리 법은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유포했을 때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박선영 박사·서울대 법학 21연구단)

그렇다면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 측을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는 사건이 늘어가는 추세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사람들은 꼼짝없이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박선영 박사는 “성폭력이 사실이거나 또는 사실이라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설명한다. 즉 성폭력 사건 공론화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소설가 박모씨가 운동사회내 성폭력 추방을 위한 100인위원회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한 사건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됐다. 담당 검사는 “100인위원회의 활동이 고소인을 개인적으로 비방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운동사회내 성폭력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 하에 성폭력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우고 공론화해 성폭력을 예방하려는 의도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공소부제기 이유를 밝혔다.

또 작년 후배시인을 폭행 및 성희롱한 혐의로 고소된 박모 시인 사건과 관련해 사건당시 동석했던 심모 교수의 추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여성신문 기사에 대한 심교수 측의 명예훼손 청구소송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기사는 주로 문단 내 음주문화와 남성문인들의 후진적 성의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공공의 이해에 관련되었으며 그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기사에 적시된 사실관계 또한 진실하거나 적어도 진실한 것으로 믿는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성폭력 가해자 역고소 대책회의’ 측은 “법원의 ‘공익성’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즉 ‘공익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말 KBS 전노조부위원장이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여성 2인과 이를 공개한 100인위원회 관계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피고 측 변호를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100인위원회의 가해자 실명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신고율이 낮은 이유는 성폭력에 대해 사회가 침묵을 강요했기 때문이며 이같은 분위기가 계속해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운동사회 내에서조차 조직의 안위를 위해 성폭력을 축소·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여성을 조직으로부터 내몰았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운동진영 내 성찰을 꾀하고 사회전체 성폭력을 근절하려는 시도다.”

이 사건 피고인인 시타(반성폭력여성주의자연대)씨는 “성폭력 가해자가 상습범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성폭력 사실공개는 ‘잠재적인 범죄예방 효과’를 갖는다”며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사건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성폭력 피해자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지지를 요구할 때 성폭력 사실이 유포될 수밖에 없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최소한의 자구노력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가해자 역고소 대책회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 ‘공공의 이익’이라는 측면을 법리적으로 더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재판중인 성폭력 가해자 역고소 사례

경북경산 K대 교수 강간치상 사건

2001년 3월 2심에서 징역2년 집행유예3년을 선고받음.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고죄로, 대구여성의전화를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으며 대구여전은 1심에서 벌금2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중.

동국대 김모 교수 성추행 사건

학내징계위원회에서 해임 결정됐으나 교육부 재심위원회에서 복직처분 받음. 김 교수는 피해자에 대해 명예훼손 및 무고죄로, 동료교수에 대해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로 고소.

서울대 이모씨 강제추행 사건

학내 상담소에서 징계(무기정학)요청 받음. 이모 씨는 2001년 9월 피해자를 사전자변작 및 명예훼손으로 기소.

나모씨 스토킹 사건

2002년 4월 2심에서 폭행 및 협박 등으로 집행유예 3년 선고받음. 나모 씨는 한국여성민우회 2인을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를 폭행 및 협박, 위증 등으로 고소.

KBS 전노조부위원장 성추행사건

2001년 2월 100인위원회가 사건을 공개함. 고소기한 만료로 피해자는 고소하지 못했으며 가해자는 피해자 2인과 100인위 1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

소설가 박모씨 성폭력 사건

2001년 7월 강간·혼인빙자·무고·협박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2심 재판 중. 가해자는 피해자와 100인위원회 1인, 진보넷 1인, 여성신문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 모두 무혐의 처분 받았으나 최근 20여명을 또다시 고소.

<출처·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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