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흔히 일반인들이 하는 합리적 행동으로는 다룰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직장이나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이 그 본질상 지배종속관계를 이용한 성적언행이기 때문에 가해자와 불평등한 입장에 있는 피해자는 평등한 입장에 있는 당사자간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회심리학 등의 연구, 분석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를 인정하는 재판 예가 등장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 성폭력 사건은 여성종업원이 파견된 직장의 상사인 영업소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상사와 파견회사, 파견된 직장을 상대로 소송을 건 사건이다. 원고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상사는 6개월에 걸쳐 사무실에서 원고의 어깨를 안거나 가슴과 아랫배를 만지고 허리를 밀착시켜 위아래로 움직이는 행위를 하거나 강제로 키스를 하는 등 추행을 해왔다.

1995년 3월 요코하마 지방재판소에서는 “2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저항하거나 밖으로 나가 구원을 청하지 않고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로 생각하기 어렵”고 “오히려 너무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피고를 대응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성폭력을 당한 직후에도 둘만의 사무실에서 점심을 같이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등의 이유로 성폭력을 부정했다.

그러나 1997년 11월 도쿄 고등재판소는 “여성종업원의 진술이 날짜와 시간, 횟수를 일일이 특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구체적”이며 “여성종업원은 당시 남성상사가 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남성상사에게 항의하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성상사는 예전에도 원고 이외의 여성종업원에게 똑같은 성적접촉을 계속해 그것이 원인이 돼 그 여성이 퇴직하게 된 일이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아키타 현립농업단대 사건도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하던 여성이 상사인 남성교수와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숙박하던 호텔에서 교수로부터 강제성추행을 당한 사건이다.

1997년 1월 아키타 지방재판소는 “원고의 사건직후 언동이 보통 생각하는 행동이라 할 수 없다”며 성폭력사실을 부정했다. “강제 성폭력행위를 당한 피해자는 정신없이 도망가려고 하거나 반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보통인데 원고는 오히려 냉정한 사고에 의해 대응했다” “피고가 요구하는 서류를 두 번이나 내미는 등 행위는 성폭력을 당한 직후 피해자의 태도로서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등이 이유다.

그러나 1998년 12월 센다이 고등재판소는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양식을 일반적으로 경험칙화해서 거기에 맞지 않는 행동을 가공이라고 배척할 수는 없다”고 밝히며 성폭력을 인정했다. “적어도 피고가 직장상사이고 일을 계속하는 한 앞으로도 일상적으로 피고와 만나야한다는 것과 피해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성폭력 피해의 특징인 것을 고려하면 제3자에게 들키지 않게 행동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판례들은 성폭력 피해자가 취할 합리적 행동을 전제로 한 새로운 경험칙에 근거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은 법적 판단과 사실인정에 있어 종래의 재판법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었고 새로운 문제에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했다.

일본의 경우 오늘날 재판에서 성폭력에 관한 합리적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새로운 ‘피해자상’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판례가 축적되면서 사실인정에 관한 경험칙으로서 성폭력 법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水谷英夫著 <성폭력의 실태와 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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