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 이해 못해

피해자와 가해자 유형 새롭게 정립해야

남성중심 편견 깨도록 판·검사 교육 필요

“객관적 증거가 별로 드러나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반된 주장만 있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양자의 진술 가운데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결국 어느 쪽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성폭력이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신빙성 판단은 ‘경험칙’에 의할 수밖에 없다.”

이정희 변호사는 “성폭력이 사실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경험칙’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는 데 문제제기를 했다. ‘경험칙’이란 일상생활의 일이나 과학적, 전문적인 일에 대해 사람들이 얻은 많은 경험적 지식 속에서 개인차이를 제거하고 높은 개연성을 가지고 일정의 사실을 추론시킬만한 일반화된 지식, 법칙에 준하는 보편성을 가진 기준을 말한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이유정씨는 “성폭력 여부 인정은 판단하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데 수사관은 피해자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KBS 전노조부위원장의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에 대응하고 있는 이상희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중에는 피해자가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끝내 안 됐을 때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검찰과 재판부는 ‘왜 즉시 신고 안 하고 지금에 와서 문제를 삼나?’라고 묻는다”며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근민 도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측 변호인인 최은순 변호사는 “우리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 도중 진술을 번복한 것에 대해선 크게 문제삼으면서 막상 가해자가 진술을 번복하는 것에 대해선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들 변호사들은 “검찰과 재판부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특성을 알지 못한 채 기존의 통념대로 사건을 판단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인식을 같이했다.

이정희 변호사는 “범죄발생 직후 즉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극력 저항해야 하며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공포와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등의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범죄피해자의 반응을 일반화해서 이를 기준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을 판단했을 때 그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피해자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거나 사건 직후 구조요청을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문제를 제기했다거나 가해자에 대해 이성적이거나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등이 모두 피해자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급자나 친분이 있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구조요청을 하거나 강하게 저항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중적인 성규범 문화 속에서 성폭력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며 사건 이후로도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의 유형과 구체적 정황에 따라 피해자가 취할 수밖에 없었던 반응을 세밀히 분석하고 일반화해서 성폭력 피해자의 유형을 새로운 ‘경험칙’으로 도입하고 마찬가지로 가해자에 대해서도 유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사건에서 검사와 판사로 하여금 이런 내용의 ‘경험칙’을 적용해 사건을 판단하도록 하고 그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강자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법리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 피해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합리적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문제”라며 “성폭력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을 유형화시켜 그것을 ‘합리성’의 범주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성차별 판결 모니터링모임)는 “대부분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에서 판·검사들이 성폭력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는 것이 관건”이라며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수용하도록 검찰과 법원에 제도적인 요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가해자 역고소 대책회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은 10월 토론회를 열어 성폭력 판단기준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고 구체적인 매뉴얼 작업을 포함해 새로운 법리가 실제 수사와 재판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예정이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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