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지에서 ‘여성정치세력화와 관련한 특별인터뷰’라는 기획을 준비하면서 사회당 여성위원회 김숙이 위원장, 서울여성노동조합,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주연대 조현옥 대표, 경기여성연대 최순영 대표와 각각 인터뷰를 했고 거대담론으로서의 여성정치세력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부분에서의 여성정치세력화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의원의 숫자에 얽매이는 여성정치세력화로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장상 총리서리 총리임명동의안 부결과정을 통해서 여성정치세력화가 의원이나 고위관리의 여성진출 비율에 급급한 것이어서는 안되지만 그것마저도 안된 상황에서는 실질적 차원에서의 여성정치세력화 논의는커녕 거대담론 차원에서의 여성정치세력화의 논의도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한국은 훨씬 척박한 땅이었다.

나는 장상 총리서리는 여자이기 때문에 총리로 임명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총리서리가 처음 장상으로 정해졌을 때 대한매일신문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총리로 임명될 것이라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급격한 관계 변화와 장상 총리서리 개인의 과거 행적 논란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그는 정략싸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갈등구도는 민주당 경선 이후 급격히 첨예해졌다. 지금까지 대통령 후보 중에서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어놓은 적이 없던 이회창 총재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 측의 긴장이 시작됐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 이후 노무현 후보의 행보들은 기존 정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에 지지율이 다시 과거의 형세로 돌아오게 되면서 이번에는 민주당 측이 긴장하게 됐다.

이 양측의 긴장관계는 장상 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기 전까지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삼홍비리사건과 6?3 선거의 패배를 빌미로 한 민주당 노 후보와 한 총재 간의 분열로 전세는 민주당과 현정권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쐐기를 박아 기세를 대선으로까지 이어가려는 한나라당은 장상 총리서리에게 그 彭鳧?칼날을 들이밀게 됐다고 본다. 이런 전략이 가능했던 것은 장상 총리서리가 정계에서 자기 영역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상 총리서리가 정계에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정책여당인 민주당 역시 장상 총리서리를 끝까지 지지하는 것으로 당론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장상 총리서리가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여성정치인 상은 아니다. 그리고 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줬던 적극적이지 못한 모습들은 같은 여성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총리로 임명되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들 군대에 안 보내고 호화빌라에서 살며 손녀를 원정출산 보낸 남자 정치인은 한 당의 총재를 역임했고 현재 지지율 1위의 대통령 후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총리로 임명되지 못한 것은 정계에서 힘이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성들이 힘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여성이 정치판 세력다툼의 희생양이 돼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손으로 일구어낸 여성정치세력화가 필수적이다. 8?보궐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그 정치적 희망을 실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신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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