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 아니 월드컵 응원의 열기는 아직도 거리 곳곳을 채우고 있다. 포스트 월드컵 국가 장기정책은 그만두고라도 붉은 색에 대한 열정은 급기야 ‘레드 커피’를 탄생시켰을 정도다. 이번‘붉은 악마’현상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의 건조한 심장을 가장 화끈하게 달구었던 것은 무엇보다 거리에 물결치던 여성들의 극도로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월드컵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다채롭게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던 젊은 여성들-이들의 이‘눈부신 출현’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이들의 폭발적인 힘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고 여전히 미래 진행형의 역동적인 답들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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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은 여기에 하나의 신선한 해석과 대답을 제공한다. 2001년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우리는 10대 청소녀 축구단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누비는 여성 축구선수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슈팅 라이크 베컴>은 축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고 또 무진장 잘 하는 두 여자아이들의 성공담이다.

실제로 미국여자월드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이 영화에서 관객은 축구라는 스포츠 양식에 담겨있는 뿌리깊은 성별 이데올로기에 직면한다. 오죽하면 청소녀들이 축구선수가 되길 꿈꾼다는 것, 실제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에 스카웃 된다는 것 자체가 ‘판타스틱’ 하지 않느냐는 감독의 고백이 있을까. 매번 감탄사와 더불어 인용되곤 하는 히딩크표 전술이 보여주듯 축구는 엄청난 체력과 테크닉 그리고 지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스포츠다. 그리고 이제껏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두 여고생 줄스와 제시는 축구를 매개로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쌓아간다. 평생 공주로 살고 싶어하는 다른 여자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강도 높은 특별한 열정 때문에 그들은 상대방에게서 자신을 닮은 특별한 존재를 발견한다.

중간에 비집고 들어온 삼각 로맨스의 상투성도 축구를 ‘몸으로 살아내는’ 두 소녀의 열정을 퇴색시키지는 못한다. 카페에서, 침대 위에서 서로 속살거리는 소녀들의 모습만을 지나치게 많이 봐 오던 관객들에게 그라운드에서 호된 훈련을 견디고 실전에 임해 죽을 듯 치열한 게임을 치뤄내는 그녀들의 ‘광풍처럼 움직이는 몸’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해방적이다.

물론 영화는 다소간의 불편함도 제공한다. 소위 다문화주의와 휴머니즘의 기치 아래 인도식 전통문화와 그에 대한 영국식 오해들을 잘 버무려 재미있는 문화적 차이 및 교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과잉으로 빠지고 그래서 식상한 오리엔탈리즘의 장면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이 축구와 관계 맺는 방식이 그리고 여성이 축구와의 관계에서 체험하게 되는 열정이 단지 ‘붉게’자신을 장식하고 응원하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 바로 저 치열한 몸싸움의 주인공이 되어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은 데 있기도 하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가시화시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잘 만들어진’ 영화다.

김영옥 한국여성연구소 전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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