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적인 머리의 표준이 된 긴 생머리

나는 숏컷트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가볍고 시원해서 좋지만 사실 처음부터 짧은 머리였던 건 아니다. 특별히 컷트 머리를 선호해서 자른 것도 아니다. 예전의 머리, 정확히 말하면 그 머리를 향한 여러 충고들 내지 압박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부스스한 곱슬의 긴 머리.

요즘같이 매직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는 것이 쿨∼한 머리스타일의 대표격인 양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부스스한 곱슬머리라니! 미용실 가서 매직파마 제의 받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머리스타일 바꾸라는 말 좀 덜 듣고 싶어서 잘랐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곱슬머리를 가만두지 않는 것일까. 곱슬머리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곱슬머리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 머리 스타일에 특별히 관심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곱슬머리를 그대로 두는 사람은 단번에 미적 감각이 떨어지고 빈티나는 사람으로 보이기 일쑤다. 곱슬머리인 사람을 미적 기준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곱슬머리 콤플렉스가 여성들에겐 긴 생머리를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동창들을 만났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긴 생머리로 변해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예전의 그 정든 곱슬머리들은 어디로 가고 다들 이렇게 쫙쫙 펴있는 거야.’ 고등학생일 때 긴 생머리에 화려한 옷을 입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것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긴 생머리를 지닌 청초한 여대생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긴 머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반면에 부스스하고 부피가 큰 곱슬머리는 불쌍하게 보았다. 마치 살찐 몸과 얼굴에 난 여드름을 혐오하듯이 미래에 반드시 고쳐야(?)할 성질의 치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연산 생머리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이 반곱슬, 곱슬인 머리인데 이것을 핀다는 게 쉬운 일인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스트레이트나 매직 파마를 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머리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어떤 ‘여성적인 머리’의 표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걸 보자니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긴 생머리가 단정하다는 것은 누구의 시각이며 긴 머리의 환상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곱슬머리에 대한 조롱 가득한 낙인과 긴 생머리에 ‘청순한 여성’이라는 가부장적 입맛에 맞는 여성성을 덧씌운 낙인은 서로 얽혀 작용하며 배타적인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고 다양한 개성들을 가로막는 것 같다.

유라주luvfli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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