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말레이시아 시댁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거실을 가로질러 있는 길다란 제단, 그 위에 놓여 있는 다양한 형상의 신상들이었다. 좀 더 둘러보니 앞마당에도 마루에도 부엌에도 그리고 뒤뜰에도 작은 제단들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진 뒤마다 향을 밝히고 하늘과 제단들을 향해 무언의 기도를 올렸다.

좀 더 익숙해지고 보니 말레이시아는 인종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종교 의식도 생활화돼 있어 다수 여성들이 집안에 있는 제단을 청소하고 간단한 의식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회교가 국가종교인 이 곳에선 무슬림 회당이 마을마다 도시마다 위치하고 있어 이른 아침이면 근처의 회당에서 울려나오는 청명한 코란 낭송이 항상 새벽잠을 깨운다.

말레이 가정에 들어서면 코란 구절을 새긴 액자가 벽에 걸려 있고 거실 한켠에는 가족들의 기도 장소인 신성한 카페트가 놓여 있다. 방문객들은 집안으로 들어서기 전 문 앞에 놓인 물로 손과 발을 씻어야 하며 악수를 하고 난 손을 자신들의 가슴으로 가져감으로써 서로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중국인이나 인도인 가정에 들어서면 대문부터 시작해 거실 안에 가족수호신이나 선조의 사진 신상들이 모셔져 있다. 이 신상의 청결을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제물을 올리는 것이 여성들의 주 의무이다.

또 일주일을 건너기 무섭게 있는 다양한 종교 행사일정에 맞춰 집안에서 제를 치르고 근처

의 절로 가서 향과 제물을 올리는 것이 관습이기도 하다.

사업장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번창과 유지를 위해 입구 혹은 사업장내 한켠에 수호신을 모시는 제단과 램프, 신선한 꽃과 과일 등의 제물들이 놓인 예가 허다하다.

나라 전체적으로도 일년 내내 다양한 종교행사와 민족축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머리

에 자스민을 꽂고 가족 친지 이웃과 함께 행사장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밝은 옷차림의 이곳 여성들은 웃음을 잘 터뜨리는 순박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가정 내외적 특히 종교적으로 여성의 비중이나 역할이 큰 사회, 그래서인지 말레이시아 인들은 공격적이기보다는 대체로 수용성이 강하다. 다양한 종교가 생활화돼 서로의 이질성에 대한 참을성과 이해도 깊다.

타종교나 관습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고 너그럽다. 다른 인종의 이웃끼리 서로 존중과 배려, 웃음과 인사를 교환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신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일까. 말레이시아는 심각한 자연·인공적 재해를 겪어본 적이 없다. 시기에 적절하게 비도 많이 내리고 녹색의 나무도 많고 반짝이는 햇살이 아름다운 말레이시아는 특히 여성들의 당당한 미소가 눈부신 평화로움이 충만한 나라다.

임봉숙 말레이시아 통신원/요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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