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인 아이들 방치하는 중국의 성교육

“쉬는 시간에 사귀는 아이끼리 교실 뒤에서 뽀뽀를 하고 있어도 다른 학생들이 아무도 이상하다고 안 봐요.”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온 이경미(17)는 한국 학생들이 남녀교제에 훨씬 개방적이라고 여겼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단다.

“그런데 우리가 어쩌다 오빠들과 얘기하면 선생님이 남학생을 사귀는 것은 교칙에 어긋나고 중국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니까 복도에서 남학생과 얘기하지 말라고 해요.”

한국 유학생들의 있는 그대로의 지적이 성문제에 관한 중국인의 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학교 선생님인 기성세대는 아직도 ‘쉬쉬’주의이고 청소년들은 이를 벌써 넘어서 대담할 정도로 개방적이다.

아래는 지난 5·1 노동절 연휴를 마친 후 베이징천빠오(北京晨報)신문에 난 기사 일부다.

‘황금연휴 동안에 전국에 낙태 열풍이 불었는데 그중 청소년들도 상당수였다. 광저우(廣州)시 일부 대형병원 산부인과들이 대략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 5·1절 연휴기간에 최소한 1백명의 여학생들이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낙태 열풍이 아닌 일부 여학생들의 행동과 생각이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가방을 맨 채로 병원을 찾아와 “저희는 학생인데 싸게 해 주실 수 있나요?” 하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의사는 낙태한 여학생들과 면담하는 중 많은 여학생들이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남자친구가 있으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무능하다’고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광둥성 성학회 부회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조숙하기 때문에 성교육이 아직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성’ 문제에 대해서만은 사회가 개방되지 않아 청소년들의 정확한 인식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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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청소년의 성교육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최근이다. 지난해 가을 16살밖에 안된 여학생 2명이 미혼모가 된 일과 고2 학생 두 명이 음란 비디오를 보다 경찰에 들킨 후 학교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자살한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교육이 공론화됐다.

베이징(北京)시 정치협상회의(이하 정협) 소속 1백50명의 위원이 발표한 ‘미성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사회문화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사보고’에서 베이징시 미성년자들은 성 지식이 상당히 부족하며 일부는 결혼 전 성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협위원들은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청소년의 성 건강교육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우선 청춘기의 성 건강교육과 생식보건서비스사업을 지도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학교에서 ‘청춘기 성 건강교육’ 과목을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올해 초에는 정식으로 성교육 교재가 하얼빈(哈爾濱) 의과대학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들은 쑥스러워 말못하고 많은 학교에서는 건강교육 과목을 설치했으나 성지식 문제가 나오면 교사들도 건너뛰면서 대충 가르치는 상황이다.

중국 젊은이들이 공공장소에서 거리낌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데 대해 어떤 이는 결혼증명서가 있어야 함께 숙박을 할 수 있어서 데이트를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가 멀다보니 자연히 부모를 빨리 떠난다는 점이다. 대부분 도시에서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부모로부터 받을 보호나 애정을 이성으로부터 얻게 된다. 감기가 걸려 열이 나면 가족 대신 이성친구가 약을 챙겨주기에 가족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즉 부모보다 더 가까이에서 아픔 슬픔 기쁨 등을 나누고 의지한다. 대학에서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연인들이 매우 많다. 이들은 배가 아프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약을 사오고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을 때도 하염없이 기다려준다.

그러다 졸업 후 직장에 숙소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집세를 나누고 서로 의지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한다. 동인밍(28살)이라는 여성은 “지금 사람들은 동거가 유행이에요. 서로에게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도 없어요”라며 자신도 주위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다.

중국의 이성교제가 가정을 빨리 떠날 수밖에 없는 요인에서 출발한다면 성교육은 부모가 아닌 사회, 즉 교사들이 맡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다루는 게 현실인 것 같다. 학생들은 비디오나 음란서적 같은 경로로 성 지식의 공백을 메우고 청소년들의 임신과 낙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학교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언론에서 성교육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알려서 사회분위기를 확산하고 있는 정도다.

중국의 여성인권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성교육 부재가 낳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더디다고 할 수 있다.

박경자 중국 통신원/ 연태대학 한국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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