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애/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ilove@lawhome.or.kr

김준이(가명, 39세)씨는 남편의 폭력과 외도에 시달리다 11년전 이혼했다. 이혼 당시 건설중기 등 남편이 하고 있던 사업에 필요한 재산들은 남편이 모두 가졌고 김준이씨는 임대보증금 3백여만원만 들고 자녀들과 서울에 올라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친정의 신세를 져야 했다. 남편과 시댁의 서슬에 눌려 양육비에 관해 말 한마디 못해본 김준이씨는 친척들에게 빚을 얻어 조그만 음식점을 시작했으나 7년만에 파산하고 친정부모의 임대아파트 방 한칸에서 남매들과 어렵게 살고 있다.

파산 직후 건강마저 나빠져 전남편에게 자존심을 숙이며 처음으로 아이들 양육비로 천만원만 주면 다시는 부탁을 하지 않겠다고 제의해 보았으나 전남편은 자신도 부도가 났으니 정 어려우면 입양시키라며 입양동의서에 도장까지 찍어주었다. 17세 연하의 여자와 살고 있던 전남편은 말로는 부도가 났다지만 기계 등을 시동생 앞으로 이전해놓고 고급승용차를 굴리며 살고 있었고 시부모 역시 해외여행을 다니며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근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를 다치게 해 치료비 등 적잖은 부채를 지게 되면서 김준이씨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전남편에게 연락해 양육비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으나 동거하던 여자와 헤어지게 돼 슬프다는 넋두리만 들어야 했다. 아들이 친구와 싸우게 된 원인도 전남편이 어린 여자와 살고 있다는 것을 안 친구가 ‘너희 아버지는 원조교제한다며?’하고 놀렸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법에 호소해야겠다고 판단한 김준이씨는 전남편을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하기 위해 본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김준이씨는 아이들이 전남편과 시아버지의 성을 쓰고 있으니 부모로서, 또 할아버지로서 의무를 방기한 것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 과해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어 설명에 힘을 들여야 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아이들만을 키우며 혼자 살려고 했는데 주위의 권유에 따라 재혼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남편은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아이들은 전남편의 호적에 남아있어야 하느냐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들 성을 바꾸고 싶다고 해 호주제와 관련해 가능하지 않다는 설명을 하니 입양동의서에 쉽게 도장을 찍어보내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성을 아이들이 그대로 유지해야만 하도록 만든 법은 이혼여성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작 해야 할 의무는 안지켜도 그대로 두면서 유리한 것은 다 남자쪽이 차지하니 여자들이 너무 억울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준이씨는 자신이 재혼할 경우에는 아이들 성을 새남편의 성을 따라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해야했던 필자가 김준이씨로부터 어떤 공박을 당해야 했던가는 자세히 적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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