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의 백지 수준이다. 월드컵 시즌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전체가 술렁이는 기운에도 난 이방인처럼 행동했다. 폴란드 전 때에는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전반전 내내 아파트 전체가 들썩거리는 걸 보았고 후반전 동안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유영하며 내 시간을 즐겼다.

월드컵 사상 최초의 승리를 가져다 준 폴란드 전.

내 생애에 밑그림처럼 깔려있던 ‘한국적 패배주의’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시청 앞을 빼곡이 메운 길거리 응원단의 붉은 물결을 향해 ‘편하게 집에서 보지!’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미국 전은 나를 TV 앞에 앉혀 놓았다. 선수들이 입장하고 선수들의 얼굴 위로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가슴 한쪽에 묵직한 통증처럼 뭔가가 뭉클거리며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피부 표면에 올올이 소름이 돋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송송거리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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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감정은 애국심’이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던가.

이것이 ‘애국심’인지 소녀적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줌마의 순수함인지 알 길 없지만 미국 전 내내 아쉬움의 탄식과 흥분의 용광로 속을 여한없이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았다. 나도 되는구나!

내친 김에 식구들의 붉은 악마 티셔츠와 아이들의 두건까지 샀다. 그리고 포르투갈 전 때에는 식구들이 모두 붉은 티를 입고 전광판이 있는 광장으로 달려갔다. 일찌감치 돗자리를 펴고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면서 바로 내가 목이 쉬어라 ‘대~한민국’을 외치고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치는 붉은 물결의 일원이 된 것이다.

유쾌! 상쾌! 통쾌!

16강을 결정지었던 박지성의 왼발 슛은 장쾌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설기현이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2분을 남겨놓고 동점골을 넣었을 때 나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구든 끌어 안고 ‘코레아 화이팅!’을 외치고 싶었고 안정환의 역전 골든골의 감격에 아이들과 붉은 옷을 입고 아파트를 한바퀴 연호하며 행진했다.

불과 2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이다.

아슬아슬하게 버거운 경기를 펼치는 스페인과의 경기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수없이 되뇌였던 말!

‘8강으로 되었다. 너무 잘 싸워 주었다. 태극 전사들!’

그런데 그들은 마지막 승부차기로 4강 티켓까지 따 준 것이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드라마를 생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16강에 들어갈 수가 있니?’하며 엉엉 울었다던 친구에게 ‘친척 중에 축구선수 있니?’하며 놀렸던 나는 이제 마음놓고 울고 싶어진다. ‘어떻게 우리가 4강까지 갈 수 있는 거니?’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를 축구 강국의 대열에 성큼 올려놓은 월드컵. 많은 징크스를 깨고 새로운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영웅적인 스타를 배출한 화려한 축제였다.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월드컵 기간 내내 질서정연하게 성숙한 국민 의식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정치나 경제면에서도 강국의 모습을 갖춰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김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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