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언/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http://antihoju.jinbo.net

지난주 호주제 칼럼에 소개된 사연(병원에서 보호자 서명을 요구하는데 딸은 서명자격이 없다는 사연)을 읽으신 독자님들은 가슴 아프셨을 것이다. 당장 수술이 급한데 병원측에선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술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니.

물론 이번 일은 병원측에서 전적으로 잘못한 일이다. 수술동의서에 아버지, 아들의 사인이 필요하다는 조항따위는 없다. 이런 사실에 대해 어떤 이들(몇몇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문제없지 않느냐, 병원에다 항의하면 해결된다고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인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친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의 고통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안타까움보다는 그 당사자들의 무지(?)를 탓한단 말인가. 도대체 호주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길래 당사자들의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무식해서 당하는거다. 얼마든지 해결책이 있다.”라고 일갈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면 좀 알아들으시려나. 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그나마 이 정도라도 챙길 수 있는 현실이 끔찍하지 않냐고 말이다. 잘못된 법(호주제)이 엄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이런 비뚤어진 법감정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 실질적인 다른 법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런 일과 부딪칠 때마다 법적 근거를 대며 계속 싸워가며 알아서 챙겨먹으시라고? 이런일 당하면 몰라서 당하는 거라고? 앞으로 모든 여성들은 법률 전문가가 돼야 한다. 그래야 이만큼이라도 챙길 수 있다. 국가의 배려가 고맙지 않은가. 법공부까지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니까 말이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두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그 고통에 공감하며 같이 해결책을 고민하는것. 두번째, 아 그런 일이 있구나 하며 별관심 안가지고 내 갈길 가는것. 난 두번째 경우의 사람들에 대해서 솔직히 아무런 감정이 없다. 호주제 존치론자나 호주제 존폐에 관심없는 사람들에 대해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떤 도덕적 잣대로도 평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찾기에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다면 그것은 묵과할 수 없다. 아파하는 사람보고 무식해서 당하는거라고 일갈하다니 당신들은 과연 ‘인지상정’이란 단어가 있는 것은 알고 있기나 하단 말인가.

덧글: 그 가슴 아픈 사연을 올린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남자들은 좋겠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주고 기다려주고 대우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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