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성교육 강사의 후일담

성교육 1회성 주입식 교육에 그쳐선 안돼

구성애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던 시절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막연하게나마 저런 훌륭한 성교육 강사가 되어서 왜곡된 성문화를 개선해 보리라 생각했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 강의내용의 한계도 있었지만. 여하튼 요즈음 난 막연하게 꾸던 그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중학교 1학년과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나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첫 강의날, 대상은 여남공학 중학교 1학년. 40여명의 조금은 헐거워 보이는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 단체와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하고 있는 나의 이름 ‘한황주연’을 소개하자 여기저기서(특히 여학생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좋겠다” “나도 하고싶다”등등.

관심 끌기로 기선을 제압한 나는 준비해간 강의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미혼부모가 왜 생기나,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몸의 준비와 마음의 준비가 있는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몸의 준비는 자기 몸과 상대방 몸에 대한 이해(외부 생식기를 주요대상으로)와 피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마음의 준비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적 행동을 할 때 자기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이를 존중해야 하며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터프한 남성과 내숭떠는 여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자 새로운 개념이었는지 귀를 기울였다.

또 아이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처녀막은 단지 질주위의 근육이고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파열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 한부모 가정은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있을 수 있는 가족의 한 형태이며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원래 성기의 명칭은 보지, 자지이며 이를 욕으로 사용하지 말자는 것 등을 얘기했다.

이후에도 학년별로 수위를 달리해서 중3과 고2의 성교육을 출강했다. 첫 강의를 했던 중학교 1년생들의 경우 7차 교육과정을 배워서 생물학적 성지식이나 피임법 등은 탁월할 정도로 잘 알았다. 질외사정이란 것이 나쁜 피임법이라는 것도 교과서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철학을 배제한 지식일 뿐 아이들에겐 다른 과목과 똑같이 외우고 시험 잘 봐야하는 교과목이었다. 성교육 시간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위주의 성교육은 지양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나간 중3 여학생들의 경우는 1학년들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성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출산비디오나 낙태비디오를 봤다고 했다.(그런 건 아무 설명도 없이 왜 보여주나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것보단 아예 안 하는 편이 더 낫다) 생리주기와 사후처리에 대한 문제를 경험자의 입장에서 말하니 생리주기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한 학생이 매우 좋아하며 자신이 정상이란 것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고 소녀들의 산부인과란 곳이 있고 생식기가 아프면 다른 병원에 가듯 산부인과를 가도 된다고 하니 그것 역시 매우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나간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들의 경우 요즘 이슈가 되고있는 이경영 사건을 함께 얘기하면서 남성위주의 시선과 유인성매수(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원조교재의 대안용어) 문제에 대해 설명했는데 잘 듣는 눈치였다. 그 학생들은 내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인지 대중매체에서 은어로 처리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다. 또 자신이 알고있는 성지식에 대해 확인하기도 했는데 “생리기간에 성관계를 하면 임신이 안 되는지” “3개월 이전에 낙태를 하면 몸에 무리가 없는지”란 질문이 가장 많았고 성병, 임신, 피임 등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그 학생들 중 몇몇은 성관계 경험이 있는 듯 했다. 자꾸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궁금해하면서도 질문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섣불리 다가갈 수 없어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출강을 하면서 많은 자신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빛과 질문으로 강의에 대한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이런 성교육 역시 주입식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고 1회성 교육이 아닌 연계교육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학습이 되지 않는 것 또한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직도 너무 순수하고 예뻤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우리가 주고자 하는 개념에 대해 반대급부없이 잘 흡수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식이 건강한 성교육 강사로부터 재미있는 성교육을 받는다면 왜곡된 성문화가 개선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안고 왔다. 성교육 강사로서 첫발을 내딛은 내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황 주연·(안양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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