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주/ 한양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미국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자신의 저서 <제1의 성>에서 “여성이야말로 21세기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주체”라고 했다.

유기적인 ‘거미집식 사고’(Web Thinking)와 뛰어난 언어 감각,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유연한 인간관계, 사회 정의에 대한 순수한 관심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여성성’은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오늘의 조직 환경과 글로벌한 시장의 요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기에 여성적 마인드는 매우 유용하며 여성들은 다시 ‘제1의 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21세기에서 여성적 마인드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 역사를 이끌어가는 순리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여성이 제1의 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여성주의화’될 수 있도록 영성(Spirituality)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헬렌 피셔가 말한 거미집식 사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유연한 인간관계 등은 영성회복을 이루는 부분집합들이다. 문제는 이런 영성회복의 과제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참된 본성에 대한 회복과 타인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타인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일깨움이 바로 그 영성회복의 시작일 것이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자기성찰성이라고 했다. 자기 성찰성을 여성의 중요한 특성으로 본 것이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나 혼자의 뛰어남이 아니라 주위와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것, 경쟁이 아니라 화해로, 독점이 아니라 나눔으로, 힘의 논리가 아니라 대화와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정서는 영성의 표현이며 이는 곧 자기성찰성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성적 가치들은 여성의 특성이면서 동시에 성으로서의 여성과 남성을 초월해 있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잠재된 뿌리만 가지고 이상이 현실이 되기는 어렵다. 여성성 안에 내재된 영성과 성찰의 근거들을 어떻게 하면 외연화시킬 수 있는가, 성찰과 영성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명쾌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인으로부터 자기성찰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우선돼야 할 것은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작은 개체로서의 나를 벗어나 본성의 입장에서, 전체가 된 입장에서 다시 나를 보고 타인을 보고 이웃과 사회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성찰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과 관습을 떨치지 않고서는 이루어내기 힘들다. 심지어 나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조차 한발 물러서서 되새겨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해답은 간단하다. 비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지녀온 온갖 관념과 관습을 하나하나 비워가다 보면 양파껍질 벗기듯 마음도 벗겨져간다. 버리고 버려 마침내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참된 본성만이 남았을 때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새로이 다가온다.

개개인이 본성에 가까워질 때 그 본성은 새로운 문화가 되고 사람들을 그 문화속으로 이끌게 된다. 개인의 변화가 사회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체는 전체가 되고 전체는 다시 개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인 21세기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위 ‘마음 공부’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성찰의 사회로 사는 신호인 것이다. 성찰하는 사회의 미래는 밝다. 미래는 바로 오늘이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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