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현주/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어머니가 대수술을 받으셔야 했는데 수술하기 전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하다며 아버지를 불러오란다. 아버지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병원에 오실 수가 없기 때문에 딸인 내가 대신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아버지와 남편 다음은 아들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효력이 없는 딸의 ‘사인’은 받아줄 수가 없다고 했다. 딸만 둘인 우리 집의 사정 얘기를 하며 어머니의 실질적인 보호자인 내가 ‘서명’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냐고 해도 무조건 아버지를 불러오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온 어느 딸의 호소문을 접하며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나도 이와 유사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모님이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이제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친딸인 시누이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시누이의 시모께서도 편찮으신 바람에 그리로 가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 관계자는 ‘보호자란에 사인을 해야 한다’며 장남만을 찾는 것이다. 물론 ‘여성환자의 보호자는 아버지, 남편, 아들 순’이라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딸의 ‘보호자 서명’을 거절한 의사를 고소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약자인 환자가 의사에게 법적 근거를 들이대며 따진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다.

왜 딸은 어머니의 실질적인 부양자일 경우에도 환자의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왜 딸은 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배우자의 부모님께 먼저 도리를 다 해야 하는 것일까?

딸을 가족으로부터 소외시키며 현실의 법을 우선해 우리의 의식을 점령하고 있는 호주제는 각종 사회 보장제도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부계혈통 위주의 가족’으로 한정시킨다. ‘딸 부부’가 부모를 모시고 살 경우 실제로 함께 동고동락하는 부양과 피부양 관계를 인정해줘야 함에도 이들이 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는 까닭은 호주제가 법으로 인정하는 ‘정상가족’이란 ‘부모와 딸 부부’가 아니라 ‘부모와 아들 부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봉건 시대의 ‘삼종지도’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 후에는 남편을, 남편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르라’는 여자의 도리를 말하는 것인데 한국의 호주제는 이를 계승발전(?)시켜 어린 손주가 할머니의 호주가 되는 현대판 ‘사종지도’를 낳았다. 그리고 이런 ‘사종지도’에 호주제의 ‘부(夫)가 입적’이 가세하면서 기혼여성을 법적으로 ‘출가외인’으로 만들어 버리니 딸은 부모의 자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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