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권력갈등의 장

화장실만큼 인간의 감각기관이 곤두서있는 곳이 있을까?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모두 잔뜩 긴장하여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성별구분이 나름대로 엄격한 만큼 성별불평등 역시 확실하게 작동한다.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대학 내에서 여자 화장실의 수는 훨씬 더 적고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용하는 시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내에는 심지어 사용자체가 불편하게 만들어진 화장실이 있다. 예전 우리 학교 법대건물이었던 백양관 여자화장실은 너무 좁아서 앉으면 앞으로는 무릎이 닿고 뒤로는 엉덩이가 닿는다. 건축현장에 여성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날림으로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사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사회대 건물의 경우에는 여자 화장실이 두 층에 하나밖에 없고 그나마 있는 곳도 한 칸을 넓게 장애우 칸으로 고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칸은 2개뿐이다. (그 장애우 칸에 실제로는 휠체어가 못 들어간다고 한다)

@16-1.jpg

화장실의 외적인 문제 외에 더 많이 접하게 되는 묘한 갈등이 있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남자화장실을 지나쳐가야만 할 때 0.5초의 짧은 시간에 느끼게 되는 분화되지 않은 복잡한 감정들이다. 안보고 무시하면서 유유히 지나치려해도 보이는 모습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언제나 ‘보여지는 자’와 ‘보는 자’에 있어서 보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보는 주체는 남성이었다. 하지만 보이는 대상이 바뀐다고 해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보여주는 자로서의 남성이 가진 권력은 보는 여성에게 불쾌감과 위축감을 안겨준다. 여성의 벗은 몸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반면 남성의 벗은 몸은 여성에게 원초적인 두려움과 불쾌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무수한 철거지역에서 남성의 벗은 몸을 사용해서 여성에게 공포심을 안겨주고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으로 쓰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커다란 남자화장실 문이 열려있을 때에는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많은 술집에 있는 한 칸 짜리 남녀공용 화장실의 경우에는 문제가 훨씬 더 커진다. 남녀공용 화장실의 경우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면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고 있는 남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을 잠그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텐데 끝까지 문을 잠그지 않고 심지어 문을 열어놓고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놓는다는 것은 그 행위가 자신에게 어떠한 ‘피해’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결과일 것이다. (단지 약간의 쪽팔림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이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몇 번이나 불안해하면서 문이 잠겨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아무 스스럼없이 남성들이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 정말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이라는 성별화된 공간에서 단적으로 보이는 이 모습에서 이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성을 어떤 식으로 다르게 사회화시켰는지를 볼 수 있다. 여성의 성은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것, 남에게 조금이라도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 숨겨야 하는 것, 피해받기 쉬운 것으로서 교육받아 왔다면 남성은 어릴 적 돌사진에서부터 보여지듯 과시해도 되는 것, 드러내도 좋은 것으로 교육받아 왔으며 자신의 성을 드러냄으로써 남성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여성에게 위협과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김한 선혜·rain@yonsei.ac.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