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화장과 사자머리로 추억하는 대학시절

“언니, 졸업사진 찍는대요. 메이크업이랑 머리, 어디가 잘해요?”

“옷은 뭐 입을까요? 하얀색 투피스 괜찮아요?”

졸업사진 촬영날짜가 덜컥 다음주로 다가오면서 나는 사진 찍을 걱정에 초긴장상태에 돌입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졸업사진을 찍어보았지만 대학졸업 사진만큼은 왠지 모르게 부산을 떨고 호들갑을 떨고 유난을 피웠다.

만나는 선배언니마다 졸업사진 찍을 때 뭐 입는 게 좋냐고 조언을 얻기 바빴고 잘하는 메이크업 미용실을 찾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지금은 졸업사진 시즌이라 학교 앞 미용실은 예약이 거의 끝났다고 했다. 그 소문을 듣자마자 마음이 너무나 다급해져서 아는 선배언니를 통해 부랴부랴 나도 학교 앞 미용실을 겨우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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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망의 졸업사진 촬영 당일이 됐다. 미용실에 들러 나도 다른 애들처럼 메이크업과 머리 드라이를 부탁했다. 메이크업과 머리를 하는 데는 보통 3만원에서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들은 바로는 토털 25만원이 든 학생도 있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 긴 생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는데 오늘만큼은 그런 머리스타일 보다는 왠지 여성스럽고 우아하게 연출해야 할 것 같아서 웨이브를 넣어달라고 미용사 언니에게 주문을 했다. 이윽고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파우더, 아이라이너, 쉐도우, 마스카라, 볼 터치, 립글로스까지 전 과정을 마치고 나니 나의 얼굴은 정말 나도 못 알아보게 변해 있었다.

촬영시간이 가까워져 미용실을 나서서 햇빛에 행여나 얼굴이 그을릴까봐 양산을 쓰고선 학교 안 촬영장소로 향했다. 촬영장소에 들어선 순간 3년 넘게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 얼굴을 못 알아봐서 적응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 아이들도 모두 메이크업을 제대로 받은지라 다들 눈이 부리부리하고 스타일이 화사했다.

옷은 한두 명 베이지색이나 하얀색, 혹은 회색을 입었을 뿐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검정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검정색 정장을 많이 입는 건 짙은 색이 사진이 잘 나오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왜 꼭 모든 사람이 정장에 토털 메이크업에 머리를 손질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에 대중전염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집합적 동조성으로서 이를테면 옆 사람이 뛰면 나도 이유도 모른 채 뛰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너희들 졸업사진 찍을 땐 검정색 정장입고 머리도 신경 좀 쓰고 찍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들은 일제히 같은 생각으로 황급히 미용실을 예약하듯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별 비판 없이 ‘사진이 잘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고단함과 경제적인 지출을 감수한다.

졸업사진 찍는 시즌만 되면 4학년 학생들은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다들 똑같이 검정 정장복장에 토털 메이크업과 머리를 한다. 그것이 전통이기 때문에?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대학교 졸업앨범은 대학시절을 추억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평소에 등하교 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추억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우리들의 평소 복장은 청바지, 반바지에 티셔츠 걸치고 다니는 것이다. 정장은 특별한 날에만 입는 복장이 아닌가. 그런데 졸업앨범 속 나의 대학시절은 검정 정장에 신부화장, 사자머리로 추억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정필주·ewigkeif@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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