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여성노인들 삶의 질에 눈돌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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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면 또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일을 하다 보면 이 좁은 나라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지 아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엊그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상대적 빈곤감을 하소연할 때도 그랬다.

친구는 다른 자매들은 모두 큰 집에 살고 있는데 자기만 좁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불만을 호소했는데 방이 네 개나 있는 집에서 사는 친구가 집 투정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바로 전 날 만난 아흔 한 살의 김행녀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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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지금은 큰 길이 나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깊은 산촌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 할머니의 오두막집이 있다.

방 앞에 있는 조그만 마루에 앉아서 할머니는 우리를 맞으셨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할머니에게는 단순한 마루 이상의 매우 귀중한 공간이었다. 같이 살고 있는 환갑 지난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방을 차지하고 있으면 그 마루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동행한 사회복지사에 따르면 할머니는 한 겨울에도 마루에서 지낼 때가 많다고 한다. 그 뿐인가. 정신질환이 있는 아들이 어머니를 학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곳 저곳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한다. 길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다.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사회복지사들의 주선으로 지난 겨울에는 읍에 있는 단기보호시설에 할머니를 모시기도 했다. 그러나 3일에 소주 한 병씩 마셔야 하는 할머니가 다른 노인들에게도 술을 권하는 리더십(?)이 문제가 됐고 무엇보다도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할머니는 그런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곳이 어땠느냐는 나의 질문에도 할머니는 또렷하게 대답하셨다.

“참 좋아. 하지만 거기 가면 아들 걱정 때문에 맘이 편치 않아서.... 여기 와야 마음이 차분해져.”

할머니는 91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편이었고 무엇보다 강한 정신력을 갖고 계셨다. 귀도 잘 들려 대화에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기초생활보장대상자로서 생계비와 경로연금 등을 모두 합해서 한 달에 약 35만원 가량을 받는데 자기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달라는 아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본인이 직접 통장을 관리한다. 마당 한 편에 있는 항아리에 통장이나 돈을 보관하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수시로 항아리를 바꾼다.

게다가 할머니는 똑똑(?)하셨다. 할머니의 복지욕구가 무엇인지-돈인지, 의료서비스인지, 가정봉사원 서비스인지, 기타 등등-에 대해 질문했을 때 내심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신 걸로 봐서 돈이라고 대답할 걸로 짐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돈보다도 집을 고쳐줬으면 좋겠어. 나 죽어도 사람들 오면 앉아있을 데도 없고... 얼마 전에도 서울에서 누가 왔는데 잘 데가 없어서 그 날로 가버렸거든.”

우리는 흔히 주택문제가 도시에만 해당되는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농촌에는 빈집도 많으니 적어도 집 걱정은 없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하지만 김행녀 할머니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농촌지역의 주택은 여성노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한 농촌사회에서 노인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노인들, 그리고 예비노인들은 관절염과 요통, 신경통 등의 만성적 질병에 시달리면서 오늘도 불편한 부엌과 화장실, 높은 마루와 문턱을 힘겹게 넘나들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주택의 개념은 당연히 농촌에도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격변의 현대사에서 묵묵히, 그러나 강인하게 우리 사회를 지켜주었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러브하우스’는 농촌에도 필요하다. 그것은 매스컴에서 보듯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복권 같은 것이어서는 안되며 소박하지만 진정으로 농촌여성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주택수리서비스로서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 농촌의 할머니들이 자신에게 남은 잔존능력을 다 사용하면서 품위있고 즐겁게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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