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부산대 법대 교수

사례 하나: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김씨 부부는 생후 1년된 송이(가명)를 입양했다. 송이는 세상에 태어난 지 여섯 달만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임시로 친척집에서 자라고 있었으나 친척들도 아이를 계속해서 키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송이의 아버지는 한씨였고 사고가 나기 전에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김씨 부부가 민법에 따라 송이를 입양해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으나 송이의 성은 여전히 한씨로 남아있어서 아빠는 물론 오빠들과도 성이 다르다.

사례 둘: 하영(가명)이의 엄마 박씨는 남편의 주벽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하영이가 1살 때 이혼하게 됐다. 그 후 하영이 엄마는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최씨를 만나 재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남편은 하영이를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고 있으며 하영이도 새아빠를 친아빠처럼 따르고 있다. 하영이의 친아빠는 이혼 후 아이를 찾아온 적도 없고 양육비도 한 번 준 일이 없다. 하영이의 새아빠는 하영이를 입양해 자신의 성을 따르게 하기를 원했고 친아빠도 동의했지만 하영이의 성은 ‘절대로’ 바뀔 수가 없다. 민법상 부계혈통주의, 즉 ‘성불변의 원칙’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아이가 커서 학교에 다니게 되면 이 아이들은 아빠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주위의 편견과 불필요한 호기심에 시달리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받게 된다. 또한 아빠와 같은 성을 쓸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아이들은 다시 한번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는 입양아동의 복리는 물론 입양가정의 행복도 실현될 수 없다.

입양제도의 목적이 입양아동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입양법은 오히려 입양된 아동을 불행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부계혈통주의를 조장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국내입양 부진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현행 입양법에 대한 개정요구가 분출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자제도의 개정안은 이미 5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소위 ‘유림’들이 개정안의 통과를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월 8일 성균관의 최창규 관장은 평화방송에 출연해 입양제도의 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혀 유림이 취해왔던 종전의 태도와는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이와 같은 성균관의 태도변화는 양자제도의 개정을 갈망하고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월 7일 개정안에 대한 국회공청회에서 소위 ‘한국씨족총연합회’ 부총재라는 구상진씨는 “근자에 성균관장이 친양자제도 도입에 동의한 것처럼 보도된 일도 있으나 성균관장 스스로(중략) 언론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강경한 반대를 부탁한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라고 진술해 성균관장의 태도가 다시 바뀌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논어 자로편에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씀이 나온다. “言必信 行必果(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야 한다)”. 즉, 한 번 말을 했으면 말을 바꾸지 말고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방송에서 한 말을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스스로 뒤집는 것이 과연 ‘전국 유림의 총수’라는 성균관장이 취할 태도인가? 공자의 기본적인 가르침도 따르지 못하는 소위 ‘유림’의 행태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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