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anti-hoju.lawhome.co.kr

“저희 6월에 미국으로 이민가요…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싫어서요.”

상담소의 호주제 위헌소송 원고인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영희(가명·여성·40세)씨가 전화통화로 알려준 내용이다.

이영희씨는 ‘자는 …부의 가에 입적한다’라고 규정한 민법 제781조 1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별해 이혼한 여성이 자식의 친권자, 양육자로서 실제로 자식를 양육하는 경우에도 한 호적에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위헌조항이라는 이유로 동 조항에 대해 위헌여부심판제청

신청을 한 신청인 중 한 사람으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알콜문제로 이혼해야 했던 이영희씨는 이혼후 1남1녀를 키워왔다. 이혼은 결혼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고 그것이 자녀들에게도 최선이었다고 확신한 이영희씨. 그러나 그는 이혼 후 호주제라는 벽에 부딪혀야만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철저히 차별하는 호주제로 인해 친권자이고 양육자이면서도 이영희씨는 자녀와 한 호적에 들지 못했다.

또 주민등록부상에는 자녀의 이름 끝에 전 남편이 호주라는 꼬리표로 붙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이영희씨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별하는 호주제는 부당하다고, 자신의 호적에 아이들을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주제 위헌소송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그동안 이영희씨 신변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이영희씨와 자녀들을 제 몸처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 재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이민을 결심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혼가정에서 호주제로 차별받는 어머니의 지위에서부터 이제는 재혼으로 인한 자녀의 성씨 문제까지 우리나라의 완고한 호주제의 틀 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살기 어렵다는 판단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호주제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므로 고수해야 하며 이혼한 극소수 사람들을 위해 법을 고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재혼가정에서 새아버지 성을 따르게 하자는 것은 근본(혈통)을 흔드는 일이라며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통과 법 그리고 혈통 이 모든 것보다 고귀하고 우위인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은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야할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고 누리고 싶은 기본적인 권리를 호주제에서는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법은 악법이다.

그리고 그 악법을 폐지하자는 근거있는 주장에 대해 책임있는 자들은 진정한 법의 정신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양심적으로 대답하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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