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소설 <깊은 슬픔>의 주인공이었던 여자 은. 사랑하는 남자의 시선을 받지 못해 점점 병이 깊어진다. 집안에 혼자 콕 들어앉아서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린다. 조용한 집안에 웽웽거리며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도 신경에 거슬리고 어쩌다 울린 전화벨 속에서 기다리던 그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나타나면 아무 잘못도 없는 전화 건 그에게 이유 없는 화가 치민다.

애써 화를 누르며 전화를 서둘러 끊고 또 다시 전화기만 쳐다본다. 다른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해 놓고 나갈 준비를 하던 그 여자, 그 남자의 연락을 받고 미친 듯이 달려나간다. 그 남자와 함께 있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또 다른 친구와 했던 약속을 기억해 낸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사과 전화 한 통 걸지 않는다.

사랑의 마술에 걸렸을 때 연인의 시선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의 모든 시간이 정지해 버리고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린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 부위를 얇은 칼로 저미는 것같은 실제적 고통도 뒤따른다. 모든 기운과 에너지가 발끝으로 몰리는 것같아 내 몸의 상반신이 다 날아 가버린 것같은 기분마저 든다.

너 아니면 안 돼서, 다시는 그런 사람 없을 것 같아서, 이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절망스러워서 ‘아닌 인연’의 끊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불안은 나의 영혼을, 일상을 점점 망치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 같은 이는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것 같다며 헤어지는 것이 어려워 그 난리를 쳤지만 그 이후에도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것 같은 사람은 어김없이 또 나타났다.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누워서 눈물만 흘리고 일을 할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길거리를 걷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훅하고 눈물이 터지고 그 어떤 것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 당신, 잠시만 멈추어 서서 다시 생각해 주겠는가. 나를 망치는 것도 사랑인지.

<깊은 슬픔>의 은, 결국 자신의 삶을 놓아 버렸다. 나는 그렇게 가버린 그녀가 슬프다. 실은 삶이 별거 아니며 사랑 또한 그렇게 어마어마한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계절과 같아서 또 오게 돼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내내 남기 때문이다.

PS: 그렇다고 내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보고는 싶지” “지금은 사랑해” 라고 미리부터 벽을 높게 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물론 그것도 자기 선택의 문제이기는 하다.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다고, 언젠가 변할 수 있다고, 죽도록 사랑하지는 않겠다고, 언제나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어떻게 사랑하든 그게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면 사랑의 방식이야 자유 아닌가.

그러나 자기방어는 상처로부터 자기를 구해줄 수는 있지만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되는 농도 깊은 사랑의 충만한 경험을 방해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사랑은 필요 이상으로 금방 끝나버리게 될 것이며 사랑이야 하겠지만 미칠 것같이 사랑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해 버려 결국엔 아무도 나를 미칠 듯이 그리워해 주지 않게 될 것이므로.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며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을 수도 있으니.

<민가영/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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