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보호 미명하에 검열불감증 무책임해

국가주도의 검열이냐 민간 자율이냐.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놓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와 시민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윤리위의 역할이 법적 강제력이 없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검열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사전제재’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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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인터넷 내용등급제를 반대하며 릴레이 농성에 들어간

시민단체들의 퍼포먼스 장면. <사진·마이너>

동성애자들의 의견교류를 위한 커뮤니티, 화가들의 그림전시 사이트 등에 대한 무분별한 경고·폐쇄조치로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고 있는 세이클럽, 다음, 네이버, 프리챌 등 정보제공자 측은 “네티즌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윤리위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윤리위는 “권고만 할 뿐 강제력은 없다”며 법적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변해왔다.

이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위원)는 “윤리위가 등급제 시행의 기준만 제시하고 보조역할에 머문다지만 실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검열효과를 가져온다면 사전제재”라며 새로운 법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판례로는 “악의적이고 선정적이고 명예훼손적인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을 정기적으로 제작, 배포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신문에 대한 제작, 배포행위까지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한 미네소타 주법에 대해 미연방대법원이 ‘사전제재’로 규정, 위헌결정을 내린 예가 있다. 법 조항에는 발행인이 발행물이 배포되기 전에 내용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발행인이 미리 법원의 승인을 얻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법률은 불법 정기간행물을 억제하는 작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을 실질적인 검열 하에 두게 된다는 것이다.

사전제재와 관련된 미국 판례들을 종합하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만 있다면 국가가 그 말을 못하도록 할 수 없다’는 원칙이 중심적인 논거다. 이상희 변호사는 “컴퓨터 통신은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쌍방향 매체로서 탈중앙통제적이고 개방적이며 정보의 내용 면에서 다양성이 추구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해악을 해소하려면 시민사회 내부에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국가가 기준을 제시하고 규율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규제시스템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인터넷국가검열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국가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막상 청소년을 위한 활동은 뒷전인 채 인터넷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화연대 이동연 사무차장은 “청소년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무조건 국가가 막아주길 바라는 성인들의 자세 역시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공대위는 이 달 28일 공개토론회를 열고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주체가 된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국가에 의한 검열’이라는 문제의식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공대위 측은 윤리위가 민간위원회가 아닌 국가행정기관이라는 주장의 논거로 △위원이 장관에 의해 위촉되고 위원장이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 △국가 예산 범위 내에서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보조받는다는 점 △규제권한 발동에 있어 직접적인 시정요구가 가능하고 그 결과를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점등을 제시해 왔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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