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우리 마누라가 변했어~”다. 좋게 말하면 여유로우면서 강해졌고 짓궂게 말하면 진짜 ‘아줌마틱’해졌다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늘어난 식구들 때문인 것 같다.

그 사이 둘째를 낳은 것도 아니고 객식구가 늘어난 것도 아니지만 우리집 쌀이며 반찬들이 줄기차게 빨리 줄어드는 걸 봐서는 분명히 식구가 늘긴 늘었다. 도대체 우리집 먹거리를 축 내는 존재는 누구지?

바로 옆집, 아랫집 애기 엄마들과 이제는 제법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고만고만한 우리 아가들이다. 아침만 각자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을 거의 매일 함께 해결하고 있으니 모두 ‘한 식구’라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집 열무김치 맛있게 익었어, 같이 국수 비벼먹자” 하는 점심 유혹으로 시작해서 모여들어 별미 국수 한 양푼을 뚝딱 해치우면 아이들은 한데 모여 놀기 바쁘고 엄마들은 차도 한 잔 마시고 수다도 한참 떨다가 다같이 아이들 데리고 나가 산책도 하고 장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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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쯤 누군가 “우리집에 가자, 밥 많이 해놨거든” 하면 또 다같이 몰려가 먼지투성이 아이들을 한꺼번에 씻기고, 우리집에선 생선 구워 가고 밥 모자라면 아랫집에서 퍼오고 반찬 한두 가지 씩 모아 요술 부리듯 진수성찬을 차려낸다. 밥 먹고 나면 한 사람은 설거지하고 그 동안 나머지는 어질러 놓은 그 집을 후닥닥 치워놓는다. 이런 식으로 우린 서로의 집을 안방에서 건넌방 드나들듯이 오픈 해놓고 지낸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저 먹고 노느라 정신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함께 먹고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무슨 일 생기면 대신 애도 봐주고 도우면서 서로의 존재는 이미 이웃 그 이상이다. 말하자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서류상의 남편들 대신 우린 서로에게 사실상의 마누라고 남편인 셈이다. 그렇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늦는 남편들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일도 없어지고 웬만한 힘쓰는 일도 남편없이 우리끼리 못할 게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모두 똑같은 처지, 대한민국에서 한 여자로서 받는 비슷한 설움 같은 걸 공유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수다는 “그래, 나쁜 여자가 행복한 거야!” 라는 당찬 구호로 끝난다. 누군가 뭘 좀 배우고 싶다면 기꺼이 아이를 봐주겠다는 것도 바로 이 사실상의 남편과 마누라들이고 좋은 책 있으면 돌려보고 쓰지 않는 물건은 바꿔 쓰고 가끔 저녁 시간에 맥주 한두 잔 정도로 우리끼리 기분 내는 일도 요즘 생활의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다.

한 상에서 함께 밥 먹는 ‘한 식구’가 따로 숨길 게 뭐 있고 서로 경쟁할 게 뭐 있을까? 이런 공동체적 생활이 가능한 것은 운 좋게 딱 맞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똑같은 처지, 비슷한 고민, 공동의 목표…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비슷한 현실이 우리를 묶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열어놓는 현관문처럼 마음의 문도 열어놓으려 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고 또 새로운 멤버로 구성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생활 변치 말자고. 그리고 언젠가 성공한 아줌마로 다시 만날 때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는 ‘여성공동체’. 어쩌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손창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도 김치찌개를 끓이며 철학하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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