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부부해고 항소심 판결평석회의

알리안츠제일생명 사내부부 해고자들의 2심 승소판결에 대해 ‘법원은 해고냐 아니냐 여부뿐 아니라 남녀차별에 대한 판단을 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여성민우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1일 ‘사내부부해고 항소심 판결평석회의’를 개최했다. 최종판결이 아닌 하급심에 대해 평석회의를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정강자 민우회 대표는 “이 판결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판결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고 법조계에도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해고 인정한 것은 반쪽 판결일 뿐

선례가 없다면 새 기준 마련해야

이광택 교수(국민대 법대)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의 강압과 협박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던 여성노동자들의 퇴직이 ‘부당해고’였음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성차별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한 차별금지법들이 있지만 88쌍의 사내부부 중 86명의 여성이 사직을 한 사건을 다루면서 법원은 ‘성차별’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현대사회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차별금지법들이 제정되고 있지만 선례를 중시하는 법원으로서는 참고할 선례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를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법원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심과 2심 재판부가 거의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반해서 완전히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조순경 교수(이화여대 여성학)는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사내부부 여성해고를 보다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성차별 판단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제시한 판단기준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법원에서 이미 10∼20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 ‘5분의 4’ 규칙이다. 농협중앙회의 경우 사내부부 가운데 퇴직한 여성의 비율은 91%이고 남성은 9%여서 여성퇴직율 대비 남성퇴직율은 10%로, 80%(5분의 4)에 미달하기 때문에 퇴직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 경우 피고 농협 측은 순환명령휴직대상자에 사내부부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될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데 다른 대안적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우선 해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위법한 성차별’이라고 판단, 퇴직은 무효가 된다.

덧붙여 조순경 교수는 “구조조정이 가부장적 통념을 차별의 도구로 동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이를 판단해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사회통념에 기반해서 판단을 한다면 법원의 존재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알리안츠제일생명 측은 대법원에 상고를 한 상태이고 농협 2심 재판은 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 평석회의에 대한 사내부부 여성해고자들의 관심과 기대는 남달랐다. 김미숙씨(농협 소송자)는 “회사(농협중앙회)가 퇴직금을 주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에 면죄부를 받고자 한다”며 “법원이 ‘공정’하게 판단해 주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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