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야기다. 그녀는 잘 나가는 부모님 밑에서 곱게 자랐다. 지금이야 치즈가 흔하지만 25년 전만 하더라도 사치품에 속했다. 그런 치즈를 매일 점심 먹고 난 후 디저트로 먹을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부러워하고 시샘할 만도 했지만, 그녀는-있는 집 반듯한 자식들이 그러하듯- 심성이 고왔던 덕에 오히려 인기가 많았다. 다른 친구들의 돈 씀씀이가 자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자기 집안의 부유함을 티내지 않을 만큼 속도 깊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수퍼우먼이 되고자 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인격과 능력과 유머를 가질 수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다 제공했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시간을, 따뜻

한 마음과 위로의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그 사람을 아끼고 위로하는 귀한 마음을, 놀고 마시느라 하숙비를 탕진한 후 징징거리는 사람에게는 하숙비를, 노동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노동력을...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것도 당사자만 알도록 배려하면서.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 남성이 참으로 많았다. 섹시함이나 가벼운 즐거움은 없으나 그걸 상쇄하고도 남는 것들 - 모성을 닮은 마음 씀씀이와 부드러움, 친절함과 희생정신, 호인을 닮은 넉넉함과 이해력이 그녀에게는 넘치고 넘쳤으므로. 그녀 또한 자기를 좋아하는 그 많은 남성들에게 마땅히 친절하였으며 마땅히 마음을 써주었다. 그러나 마땅한 사랑을 찾지는 못했다. 어쩌다 사랑이다 싶으면 그 남자는 유부남이거나 너무 가난한 사람이어서 어렵게 헤어져야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한 남성을 택했다. 사람들에게 베풀면 베풀수록 자꾸 이용당한다는 씁쓸한 배신감에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탈출, 해방, 자유를 한창 꿈꾸던 때였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절망을 위로하고자 했다. 결과는? 그토록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지점이 그 남자를 만났던 지점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거짓 주문을 외워댔기 때문이다.

그대로 답습되는 관계의 패턴. 그녀는 열심히 퍼주고 남자는 자꾸 퍼달라고 할 사건 만들기를 몇 년째 계속했다.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과 일방적인 퍼줌은 사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사람을 상호의존적으로 만들면서 황폐하게 만들고 서로를 악용하게 했다. 동화의 결과가 이러쿵저러쿵 과정도 없이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을 패러디하자면, 그녀와 그 남성과의 관계 역시 과정 생략하고 말해서 ‘그래서 헤어졌다’이다.

사랑은 때로 어렵고 복잡해서 사랑 아닌 것부터 생각하는 것이 조금 더 쉬울 수 있다. 일방적인 희생이나 순종이라면 질색하는 ‘악의 무리’에 맞서 순종의 미덕을 원칙으로 지켜나가는 태도를 착하다고 칭송하는 사회에서는 착하고 여린 심성을 아직도 지켜가는 이가 실제로 사랑을 잘 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여자는 상대의 투정까지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그 마음을 경계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조건 하나를 키워 가는 것이다. 착한 여자가 사랑을 할 때는 자신의 착함이 얼토당토않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자신의 착함을 충족하기 위하여 타인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불행을 덥석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도록 늘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이경미/ 전북여성연합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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