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이냐, ‘보지 않을 권리’를 위해 제한할 것이냐.

여성주의자들은 어느 측 손을 들어 줄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양분화된 구도 속에서 여성들은 양측 모두와 불편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여성들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은 이제껏 재생산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정보에서 차단됐으며,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위선과 검열제도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점차 확산되는 섹스산업과 현재 유통되는 포르노물의 성격을 생각할 때 무작정 표현의 자유를 찬성할 수는 없다.

문화연대, 영화인회의, 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영화생산자측은 ‘완전등급제’와 ‘성인전용관 설치’를 제안한다. 즉 모든 일반 상업영화는 18세이상가로 하여 극장에서 상영하고, 제한상영관은 포르노를 상영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포르노를 합법화할 것’과 ‘형법상 음란물 조항을 폐지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를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들은 “영화인들의 주장이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반박한다. 또한 “영화와 관련한 제도 변화가 음반, 비디오, 게임물 및 공연물과 그에 대한 광고·선전물 등 다른 영상물들에 미칠 연쇄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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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포르노 <감각의 제국>의 한 장면과 스페인에서 열린 포르노 페스티발을 담은 <포르노 영화제>의 한 장면.

여성들이 포르노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포르노가 ‘성적으로 노골적’이어서가 아니라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부터 4일동안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독립영화제는 이런 우려를 현실화한다. 이번 영화제는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제는 음란이란 개념이 특정 대상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며 상대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음란한 것의 대명사로 표현되는 동성애, 성기노출, 자위행위 등의 성적 행위나 성적 상상이 무조건 터부시되어야 할 것은 아니며 그것들 중의 일부는 억압된 것들이고 오해된 것들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여성들 중에는 여성의 입장에서 즐겁기보다 불편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평론가 권은선씨는 “자유주의적 남성 지식인들이 ‘성적 은유를 통해 한국사회 권력관계를 비판’하거나 ‘기성사회의 억압적 위선에 균열내기’라는 이유를 들어 만들어낸 이런 작품들은 여성 혐오적이거나 여성 착취적이며 관음주의에 입각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또 남성이 성에 대해 말할 때는 사회적 사건으로 다루고 저항적 표식으로 과대평가하면서 여성이 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선정적인 이슈로만 다루고 헤픈 여자로 낙인찍는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이제는 포르노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무조건 옹호하거나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는 풍토를 넘어서야 한다. 이런 단순한 도식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작품을 섬세하게 짚어보고 구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포르노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선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법 개정안 주요내용

지난 96년 헌법재판소는 당시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가 검열에 해당하는 위헌이라고 판정한 바 있다. 그 후 공연윤리위원회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바뀌고 사전심의가 등급분류로 바뀌었지만, 작년 8월 또다시 영화진흥법상의 등급보류조항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옴에 따라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마련됐고 작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개정된 영화진흥법의 핵심은 등급분류를 전체관람가·12세관람가·15세관람가·18세관람가·제한상영가로 나누어 원칙적으로 모든 영화에 등급을 주어 상영하게 하되 ‘제한상영가’(상영 및 광고, 선전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 등급을 받은 영화들은 ‘제한상영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상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제한상영관의 옥외 광고와 선전을 금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제한상영관의 광고와 선전을 볼 수 없게끔 했다. 그리고 제한상영가 영화는 비디오물로 출시, 판매, 대여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제한상영관을 운영하려는 극장주나 제한상영관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려는 감독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개정안은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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