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사람 뽑는다” 따라갔다 위안부 삶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봉임 할머니의 장례미사가 지난 7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치러졌다. 향년 80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고 김봉임 할머니는 열여섯살에 결혼, 1년 후 남편과 자식을 잃고 혼자의 힘으로 어렵게 살아가다가 나이 열여덟에 일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대구로 갔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1945년 부산항을 통해 고국 땅을 밟기까지 김 할머니는 일본을 거쳐 대만,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등지를 떠돌며 위안부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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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정대협이 할머니들과 함께 경마장 구경을 나선 봄소풍에서 생전의 김봉임 할머니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기독공보>

귀국 후 할머니는 1987년까지 생활보호대상자로 독신생활을 하다가 시력장애로 혼자 사는 것이 어려워지자 요양원인 꽃동네에서 살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본명은 안나마리아였다.

유일한 유족으로 장례미사에 참석한 남동생은 귀국 후 꽃동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김 할머니의 남동생의 전언에 따르면 할머니의 오빠도 징용으로 끌려가 사망했고, 할머니가 위안부 경력 때문에 매우 힘들어 하셨다”고 전한다.

1993년에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할머니는 그간 노환으로 수요시위 등에는 참석하지 못하다가 작년 정대협이 마련한 봄소풍에서 처음으로 다른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났다.

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이제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140명으로 줄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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