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부모·아내 역할 부담 덜고

자녀도 자기 일 알아서, 독립심 커져

한 중국여성의 남편이 새 직장을 구했다. 그 부인이 하는 말, “남편에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만 나오라고 했어요.”

중국은 보통 직장 내에 가족들이 사는 집이나 기숙사가 있다. 30대 후반인 그녀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특히 가족이라면 좀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다고 당당히 주장했다.

중국인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꾀죄죄한 겉모습과 달리 문제를 통찰하고 앞서가는 사고방식에 멈칫 놀라게 된다. 한국이라면 ‘지지고 볶아도 가족은 같이 살아야지, 어떻게 떨어져 사냐’고 한마디씩 할게다.

내 주변에도 ‘고등학생 아들은 북경, 아빠는 내몽고, 엄마는 산동성’ 하는 식으로 이산가족이 참 많다. 또 한국여성들도 중국에 오면 자연히 아이와 떨어져 살게 된다. 기숙사 생활을 교칙으로 하는 학교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고, 중국에 와서 이산가족 되었네”하며 처음에는 아이를 안쓰러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왜 중국 여자들이 표정이 밝은지 알겠다”고 한다. 가족이라도 좀 떨어져서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다보면 더욱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며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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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같은 동양권이라 우리와 같겠거니 하지만 실은 가치관의 차이가 크다. ‘여성은 곧 하늘의 절반’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자연조건의 영향으로 가족들이 일찌감치 계획형 이산가족이 되다보니 한국여성들보다 육아·교육·가사·직장·아내·며느리 등의 역할개념에 대한 압박감이 덜하다. 가족 중시는 유교적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각자 맘 편하게 사는 것이 신가족 개념인 듯하다.

중국은 대부분 한 명인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주려니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더 큰 도시로 진학을 하게 되어 자연히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다. 대학 중문과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는 어떤 학생은 자신은 유치원을 졸업한 뒤부터 줄곧 부모를 떠나 기숙사에서만 생활했다고 한다.

공동생활을 통해 남학생들은 자신의 옷을 세탁하고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게 기억하고 정리하는 등 자립하는 방법을 자연히 체득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 여성에게 엄마의 손맛을 기대하며 어리광을 피우다시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흔히 중국남자들이 집안에서 요리하는 것을 두고 ‘여자도 같이 돈을 버니까’ 라고 하는데 그런 경제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성장과정 때문이다.

대부분 가족이 떨어져 살다보니 여성들은 당연히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집안에서도 자잘하게 신경써야 할 일이 적다. 가사노동도 함께 한다. 저녁엔 남편이 찬거리를 봐오고 아내가 간단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만약 가사를 돕지 않는 남편이라면 정말 간 큰 남자가 되어 언제 사회적으로 매장(?!)될지 모른다.

한국여성들의 모습을 보자. 아이의 귀가 시간이 되면 먹던 음식도 친구도 내팽개치고 달아나는 엄마들, 아이의 학원 스케줄에 따라 운전수 노릇을 마다 않는 엄마들, 중요한 회식자리에서도 핸드폰으로 아이를 체크하는 직장여성들…자식농사가 엄마의 얼굴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은 모성을 넘어 여성 자신의 만족이나 인권에 대한 주장을 소리소문 없이 앗아가고 있다. 중국여성들의 속편한 삶을 볼 때마다 이는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곤 한다.

가족신화주의의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그 부정적인 영향은 유독 여성들에게 큰짐으로 떠넘겨지는 것이다. 여성들은 사실상 사회가 책임져야할 일을 ‘내 가족의 문제는 나만이’라며 고민을 자청하고 있다.

한국여성도 ‘가족의 성장’이라는 뚜렷한 명분을 위해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울 때가 되었다. 또 한국에서도 기숙사 등을 정비하여 부모 자식간의 적절한 인격의 객체화도 고려해볼 일이라고 본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교육비를 줄이는 대안도 될 수 있다.

지난번 서울에 갔을 때 지하철에서 느낀 한국 여성들의 인상이 떠오른다. 하나같이 곱게 화장한 얼굴들. 그러나 왠지 중국여성들보다 심사가 복잡해 보여 어두운 표정으로 비춰졌다. 중국여성들은 화장은커녕 제멋대로 걸쳐 입은 차림새라도 늘 웃고 소리 높여 떠든다. 대개 한국남자들은 “이런, 중국엔 여자소리밖에 없네, 경상도 여자보다 더 시끄러워”라고 한다.

아이들 공부 문제 하나만이라도 맘 편하게 살아가는 중국여인들! 이 나라에는 심리상담이 한국보다 그리 발달하지 못할 것 같다.

박경자 중국통신원/중국 연태대학 외국어학원 한국어 담당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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