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숙자씨와 한국여성학회에 사과를 요구하며

우리는 11월 30일자 여성신문의 발언대를 통해 강숙자씨 발표문에 대해 알게 되었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강숙자씨의 발표문과 그에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았다. 우리는 강숙자씨의 글, 그리고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반박문에 대한 강숙자씨의 해명글과 한국여성학회의 해명글을 보고 나서 실제 여성 성적소수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강숙자씨의 글은 심각한 호모포비아를 드러내고 있으며, 레즈비언의 정체성과 삶에 대해 위험하고 경솔한 결론을 내리고 있어서 인권침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즈비언의 삶과 억압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 있지 않다.

성관계 여부로 ‘참 레즈비언'(이런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과 정치적 레즈비언을 구분하는 방식은 실제 레즈비언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폭력적인 구분은 레즈비언의 실존을 모욕하는 것이다. 성관계를 갖든, 갖지 않든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이성애자의 경우, 성관계를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성애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절대 아니듯이 동성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동성애자의 경우에만 이런 잣대(성관계의 여부)로 구분을 하는 것은 동성애를 자연스런 성적 지향으로 보지 않는 강숙자씨의 편견 때문이다.

강숙자씨는 또한 “참 레즈비언의 경우 성역할에서 기존의 이성애적 모델을 따라 펨과 부치로 나누며 결혼의 합법화를 원하기 때문”에 "이성애에 굳이 편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펨과 부치의 역할은 성관계를 갖는 레즈비언의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펨과 부치의 역할이 실제 이성애 관계에서의 남편-아내 역할을 의미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실제에 있어 펨과 부치의 구분은 일부에 속하며 그것도 경우에 따라 외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성관계시의 역할일 수도 있으며 패션의 취향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레즈비언 관계에서의 펨과 부치의 구분을 일반적인 것처럼, 그리고 이성애적 관계에서의 남녀 역할과 동일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실제 레즈비언들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한 일반적 남성과 여성만을 젠더로 규정짓는 무지에서 나온 위험한 구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강숙자씨는 여성 동성애자의 저항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 서구의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남성 동성애자들은 수차례에 걸쳐 성과학대회를 개최하고 게이 퍼레이드로 시위하였기에 이에 영향을 받아서 1970년대에 들어내기를 시도한 레즈비언들은 무임승차한 셈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현실은 이제 막 소수의 여성 동성애자들이 익명으로 드러내기(coming out)를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 물론 여성학이라는 막강한 보호막 덕분에서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강숙자씨는 눈에 뜨이는 거창한 활동들만을 운동으로 인정하는가 보다.

레즈비언의 운동이 게이의 운동에 비해 드러나지 않고 커밍아웃을 적게 했다는 것은 레즈비언이 운동의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레즈비언이 커밍아웃을 하거나 드러나는 운동을 하기에 굉장히 척박하고 억압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강숙자씨는 한국 레즈비언 운동의 현실에 대해 단 두 줄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끼리끼리와 안전지대를 비롯한 여러 모임들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강숙자씨는 우리 레즈비언 운동이 여성학을 보호막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데, 이도 현실을 전혀 모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레즈비언의 대표 단체라 할 수 있는 끼리끼리는 아직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소속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많은 수의 레즈비언들이 여러 여성단체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긴 동성애자 모임은 여성동성애자와 남성동성애자가 함께 만든 모임(초동회)이었으며, 그것이 모태가 되어 끼리끼리라는 여성동성애자 모임과 친구사이라는 남성동성애자 모임으로 발전한 것이다. 실제 이 두 모임이 생긴 시기는 거의 비슷하며 사회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더 인정하는 편협함 때문에 여성동성애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 동성애자 커뮤니티내에서 여성동성애자들이 이루어 놓은 일들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강숙자씨는 모르고 있다.

우리는 12월 21일자 여성신문에 실린 강숙자씨의 해명글에서도 마찬가지의 호모포비아와 경솔함들을 보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숙자씨는 강숙자씨의 발표문을 한국여성학회 자료집에서 폐기처분하라는 끼리끼리의 요구를 망언이라고 말하면서 ‘성적 소수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성적 다수자의 의견 또한 존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성학이 이렇게 모든 다양성을 무조건 인정하는 다원주의를 추구하는 지 몰랐다. 우리가 아는 여성학은 소수자가 받는 억압에 대해 민감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며 억압에 대항하는 연대의 지점을 넓혀가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사회에서 왜곡시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왜곡시키는 글이 자유로이 발표될 수 있는 장이 여성학회라면, 우리는 여성학회에서 생각하는 여성학의 의미를 진지하게 한 번 묻고싶다.

우리가 강숙자씨의 발표문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글의 경솔함이다. 우리는 강숙자씨가 사회에서 왜곡시키고 있는 여성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생각했을 때 더욱 신중히 접근하고 많은 조사과정을 거쳤어야 했다고 본다. 그것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기본적인 태도라고 본다.

그러나 강숙자씨는 자신의 글에서 외국의 ‘일부' 이론과 자신이 외국에서 ‘우연히' 방문하게 된 레즈비언 바에서 본 것들, 그리고 외국 여성학자들을 통해 ‘전해 들은' 레즈비언의 생활을 가지고 감히 ‘레즈비언 여성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외국의 레즈비언 여성주의 이론이 한국 레즈비언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하면서. 한국 레즈비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고, 단 한 명도 심층면접해보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와 단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례로 강숙자씨는 자신의 글에서 “레즈비언 여성주의는 이성애 결혼을 가부장제의 산물로 보며 이의 대안으로서 레즈비언 공동체를 제시한다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참 레즈비언들은 실제로 동성사이의 제도 결혼을 원하기 때문에 이들 내부에서도 이론과 실제가 겉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레즈비언이 레즈비언만의 공동체를 주장하지는 않을뿐더러 우리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이성애자들과 함께 섞여 살기 싫다거나 이성애자들을 타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동성애가 자연스런 성적 지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레즈비언이 제도 결혼, 즉 동성애자 결혼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성애 관계에서의 남편-아내 역할을 따라하고자 함이 아니다. 동성애자 사이의 사랑과 결혼이 현재 합법화되어 있지 않아 가족과의 관계, 보험, 세금 등의 문제에서 갖가지 불이익과 억압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숙자씨는 글을 쓰기 전에 이러한 레즈비언의 ‘현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진지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우리는 어느 한 개인이 자신만의 좁은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구분짓고 단정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강숙자씨는 끼리끼리에 대한 반박문에서 “앞으로는 정정당당하게 실명으로, 그리고 이론으로 반론을 제기할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여성학회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은 발표자 개인의 견해일 뿐이니 끼리끼리의 회원 중 여성학 전공자들이 학회에 등록해서 공식적인 채널을 이용하여 성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실명으로 반론을 제기하라는 강숙자씨의 말은 우리 레즈비언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말이며 이론으로 반론을 제기하라는 것은 이론이 아니면 어떠한 의견도 귀담아 듣지 않겠다는 권위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강숙자씨가 한국 레즈비언의 실제 현실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한국여성학회 또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없이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고 한다면 ‘여성학'이라는 명칭을 뺐으면 한다.

강숙자씨는 자신의 발표문에서 동성애를 자연스런 성적 지향으로 묘사하지 않아 레즈비언의 인권을 침해한 점과 레즈비언의 정체성과 삶에 대해 진지한 접근과 조사 없이 경솔하게 글을 쓴 점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

한국여성학회는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글에 대해 책임회피하여 성적 소수자를 다시 한 번 소외시킨 점에 대해 사과하길 바란다.

부산경남 여성이반 인권모임 '안전지대'

200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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