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 보기 힘드네

예술가의 생을 다룬 작품이 전하는 감동은 차라리 자극에 가깝다. 그들이 보여주는 천재성, 기행, 파격, 몰두, 자기 학대 등은 너무 극적이어서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이들을 기죽인다. 너의 안온한 삶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선동하고 뒤흔든다. 물론 영화는 곧 잊혀져 내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하지만, 보는 동안만큼은 그들의 불행조차 부럽다. 짧게 살더라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충동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헌데 왜 여성 예술가의 초상은 드문 것일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여성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여성은 예술가의 내조자, 모델, 후원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조연이고, 희생자이며, 예술가의 광기를 이해 못해 떠나버리는 평범한 여성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현실 삶에 무능력한 예술가는 창작은 커녕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들의 입장에서 예술가를 조명하는 작업도 의미있는 일일텐데.

스페인 감독 비가스 루나의 1999년 작 <네이키드 마야 Volaverunt>(18세, 엠브이넷)는 프란시스 고야(1746-1828)의 대표작 ‘네이키드 마야’의 실제 모델을 추리하면서, 예술가와 후원자, 모델, 권력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예술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이들 세 여성의 역할은 그림 속에 용해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 불후의 명작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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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국왕과 마리 루이사 왕비(스테파니아 산드렐리)가 집권 중이던 스페인의 황금기인 1802년 8월 23일. 부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사교계의 꽃 알바 공작 부인(아이타나 산체스 기욘)이 자신의 새 저택 완공 기념으로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초대하여 만찬을 열고 있다. 재상 마누엘 고도이(호르디 몰라)와 그의 부인, 그리고 재상의 집시 출신 애인 페티타 투토(페넬로페 크루즈), 화가 프란시스 고야(호르게 페르고리아), 추기경, 황태자 등은 독설을 퍼붓는 공작 부인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다. 이튿날 아침, 자신의 침대에서 시체로 발견된 공작 부인의 사인을 놓고 재상이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고야와 투토가 끼어들면서 왕비와 재상의 음모가 밝혀지는데….

당대 상류 사회와 그림 제작의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이 화려한 시대극은 스페인의 대종상격인 고야 영화제에서 촬영, 의상, 메이크업, 디자인상 후보에 올랐고, 아이타나 산체스 기욘은 산세바스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oksunhee@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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