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남자도 짐이 없고 경계가 없다 모두 자연이다”

자. 이제부터 여행을 떠나보자. 소설가 이경자를 영매로 그의 책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로 들어가는 거다. 그렇게 들어가다 보면 소박하고 따뜻하며 자연스러운 마을 - 이경자가 책에서 모계사회라 이름붙인 - 을 여행하게 된다. 그러나 혹시 모계사회를 부계사회의 반대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그 개념을 과감히 버리겠다(그건 영매인 이경자도 원하는 일이다). 그곳은 “가부장제에서 시달리는 여자들, 이유조차 모르고 짊어진 어깨 위의 짐에 고통스런 남자들이 모두 편안히 쉴 수 있는 어머니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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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루그호의 모소족이 사는 마을은 “어머니만이 생명을 낳고 거두는 눈물나게 아름다운 순환이 있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중국의 려강에서 네 시간을 달려 닌링까지, 닌링에서 다시 세시간쯤 차를 달리면 만나는 곳이 루그 호이다. 그 루그 호의 반도중 하나인 리거다오에 모소마을이 있다.

“남자는 취(娶)하지 않는다.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

모소에서는 12살이 될 때까지 여성 또는 남성의 구분없이 자란다. 성인식을 치르는 12살이 되어서야 어른의 삶이 시작되는데 주위의 남자들을 살펴볼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남성이 여성의 집을 찾아 성관계도 가질 수 있다.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밤 12시부터 새벽 5시 정도까지로 가족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다가 가족의 동의를 얻어 주혼관계가 되면 이제 그 연인은 공식적으로 여성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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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자연으로 화장을 하는 여자들과 함께한 작가.그들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본성에 충실한 성관계를 하는 모소의 부부는 늘 처음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비아그라를 먹지 않으며 어느 여자도 수줍거나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그래서 생래적 불감증에 피폐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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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는 “모계사회 하면 사람들은 아버기가 다르겠네요. 혹은 일처다부젠가요? 난혼인가요? 하고 묻는데 모소족은 음란의 감각이 발달하지 않았으며 강간도 매매춘도 간통도 없다”고 한다.

‘무서운 아버지’와 ‘화 잘내는 남편’이 없다

모소족은 무서운 아버지와 화내는 남편이 없다. 대신 외삼촌인 아찌와 연인인 아하가 있을뿐이다. 이곳에서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어머니와 산다. 이곳 남자들은 결혼은 하지만 그를 낳아준 어머니와 여동생과 살며 여동생이 낳은 아이들을 돌볼 뿐 여자를 자기 아래 갖지 않는다.

이경자가 “내 존재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잣대로 이렇게 저렇게 자연스러운 성장의 속도와 정서가 막히고 뒤집히고 뒤틀리고 꺾였다. … 학교의 ‘교칙’이라는 법이 준엄해도 아버지의 공권력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남성 가부장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사회운동의 바탕에는 이런 절망과 분노의 에너지가 숨어있다”고 가슴아프게 토로할 만큼 가부장제는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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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마을 입구에서 루그호의 어머니에게 절을 하는 이경자

모소에는 그런 ‘아버지의 독’이 없다. 여성이 장악하는‘또 다른 의미의 가부장제’가 아니라 우열과 위계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도 짐이 없고 경계가 없다. 모두 자연이다.

몸과 마음의 이별이 없는 땅

모소는 자연을 경배하고 바탕이 비굴하지 않은 노동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쫓기면서 또는 무언가를 쌓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벅차지 않은 노동, 노예적이지 않은 노동을 하는 그들은 스스로 노동의 주인이고 그것이 곧 인생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이별이 없다.

그곳의 여인들은 화장품을 쓰지 않는다. 햇볕과 바람과 어둠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화장품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아는 그들은 너그럽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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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 화덕 시크.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그들은 꼭 먹을 만큼만 식량을 마련하고 먹고 뒷동산에 올라 배설하는, 자연의 순환을 조용히 따르는 사람들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거두는 그들에게 여자를 ‘취’할 자본이 발생할 리 없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그들에게 또한 자연스럽게 인간이 지니는 아픔이 있다. 생로병사의 아픔과 사랑하고 이별하는 아픔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가부장의 산업사회에서 겪는 불필요한 아픔과는 거리가 멀다. 가부장제가 부여한 고통들, 남보다 덜 가져서, 누군가가 찍어눌러서 겪게 되는 노이로제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겪는 아픔은 자연스러워서 그것을 치유하고 나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이전의 세상이 그랬듯이.

이 여행의 영매, 소설가 이경자

그는 모소 마을에 한 달 정도 있었다. 관광하지 않고 철저히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려고 했던 그는 이 어머니의 땅에서 우주의 기운, 땅의 기운, 사람의 기운을 흠씬 느낀다. 올해 오십대 중반의 그는‘가부장제의 이땅’이 부여한 갖은 역할들을 훌쩍 벗어버리고 경험한 것들을 아주 솔직하게 말해준다.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솔직함이다.

그의 표현대로 ‘낯선 천국(모소)에서 익숙한 지옥(한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큰 딸은 “엄마를 도로 그곳으로 보내주고 싶어”라고 했단다. ‘감당못할 그리움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그는 그곳에 대한 크디큰 애정만큼 혹시 그곳에 드리울 지 모를 자본과 가부장의 그림자가 걱정이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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