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민법 779조는 다음 항목에 해당하는 삶의 단위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①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②생계를 함께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건강가정기본법이 제3조에서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민법이든 건강가정기본법이든 가족 구성의 주원리로서 혈연을 중요시하고 있다. 민법은 넓은 의미에서 함께 살든 아니든 직간접적으로 ‘피를 나눈’ 사람을 가족으로 보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도 가족 구성 원리로서 혈연을 언급함으로써 가족 구성원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 ‘끈끈한 핏줄’이 갖는 의미를 잊지 않고 있다.

‘혼인신고’ 시 합의해야

엄마 성·본 따를 수 있어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으신가? 내가 피를 흘리면서 또한 아이는 내 피를 받으면서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내 성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수십 년에 걸쳐 여성운동이 투쟁해온 성과로서 호주제도 폐지됐고 민법 781조에 부모의 합의가 있다면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는 규정이 생겨났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아이는 아빠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같은 법 조항에 명시하고 있다. ‘다만’ 혼인신고할 때 두 사람이 합의할 경우 나중에 태어날 아이가 엄마의 성과 본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 과정을 경험했거나 옆에서 지켜본 수많은 선녀선남들은 알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당사자 간 결정만을 실천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작은 결혼식’이 확대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혼수와 상대 집안에 대한 예우, 특히 남자 집안에 대한 예우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부모 세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평등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시월드’라는 성차별의 세계에 입문하는 과정으로서 결혼을 언급한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과정이다 보니 중간에 멈추지 않고 결국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모양새가 마치 사회규범인 양 보편적으로 반복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혼인신고할 때 여성의 입장에서 앞으로 태어날지, 언제 태어날지 확실치도 않은 아이의 성을 엄마의 것으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지금까지 늘 그렇게 익숙하게 살아왔듯이 아빠의 성을 따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그나마 구청직원이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이지 직원이 묻지 않으면 엄마의 성을 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알지도 못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그 아이는 남자 집안의 아이가 된다.

‘출생신고’ 때 성 정할 수

있도록 민법 개정 필요

요즘처럼 부모-자녀 중심 가족 개념이 강해진 상황에서 아이가 엄마 성을 따르지 않았다고 엄마 아이가 아니고 남자 집안의 아이라고 규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에서 집안의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아이로서 의미가 더 크다면, 부모가 실제로 의논하고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부모가 갖는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성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비혼이든 기혼이든 부모 혹은 모·부가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집안의 아이이기 전에 아이를 낳은 당사자로서 부모의 아이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혼인신고 할 때가 아니라 출생신고를 할 때 부모의 성 중 누구 것을 줄지 정할 수 있도록 민법 개정을 할 수 있다. 또한 부모 중 하나의 성이 아니라 두 성을 모두 줄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둘 수 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성을 두 개로만 제한하면 나중에 성이 세 개, 네 개 길어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 내 아이를 부모 당사자가, 특히 여성이 낳고 양육할 수 있도록 가족의 모습을 재구성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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