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의 일상&문화] 명절증후군, 여성이 끝내자
[박선이의 일상&문화] 명절증후군, 여성이 끝내자
  • 박선이 동서대 객원교수
  • 승인 2018.09.17 15:37
  • 수정 2018-09-23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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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생 김지영』 김지영의 

자기 모습을 회복시키고

『며느라기』 민사린이 행복한

명절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나, 여성이다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4rin

추석이 다가오니 페이스북이며 카카오톡 등 SNS 분위기가 심상찮다. 성묘 다녀오느라 고속도로에서 왕복 대여섯 시간을 묶여 있었다는 하소연부터 지난 봄 새로 맞은 며느리를 연휴 중 어느 날 친정에 가도록 해야 하느냐는 새내기 시어머니의 고민, 총각 땐 생각도 않던 본가(?) 명절 방문에 드는 비용 때문에 심장이 쫄깃해진 새 신랑 등.

이런 사정들을 총괄하는 말로,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지금은 네이버 지식인이나 위키피디아에도 올라있지만, 이제 와서 좀 젠체하고 말하자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 23년 전에 내가 신문기자 시절에 기획기사에 처음 썼다. 발단은 명절 지나면 이혼신청 건수가 급증한다는 통계였다. 설마, 전 부치다 열 받아 이혼하자 커니 말자 커니 하겠나 싶지만, 실제가 그랬다. 분명 남편 집 차례인데 지지고 볶고 삶고 굽고 부엌에 묶여 산 자와 죽은 자의 상차림을 떠맡는 것은 아내다.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같은 명절 노동을 하다보면 평소 쌓였던 불만이 종합적으로 터져 나오는 게 당연했다.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거의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도 명절증후군이 사라지기는 커녕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이 며느리에서 남편으로, 이들의 자녀와 부모 세대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들은 아내와 어른들의 날선 긴장을 모른 척 하느라 신경이 너덜거리고 자녀들은 학업과 취직 여부를 혹여 누가 물을까 날카로워 진다. 명절은 어르신들이 주인공인가 했지만, 그도 아닌 듯 황혼 명절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말까지 등장했다. 명절에 자녀들이 다녀간 뒤의 공허감, 명절에 자녀들이 안와서 생기는 박탈감, 명절에 자녀 집으로 ‘역귀성’하며 생긴 피로감, 명절 반나절 달랑 같이 지낸 자녀들이 어린 손주(심지어 반려견이나 반려묘) 맡기고 연휴 여행가서 생기는 추락한 자존감이 황혼 명절 증후군의 주 현상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명절이 점점 더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가. 이것에 맞서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나는 사반세기 전에 명절증후군을 처음 문제 삼았던 그때의 젊은 며느리, 젊은 남편이 지금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며느리도 보고 사위도 볼 나이의 그들(우리들)이 명절증후군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명절 졸업했다. 지난 설부터다. “차례는 간소하게”가 아니라, 아무 것도 안한다. 이혼한 것도 아니고 개종한 것도 아니고 혁명을 한 것도 아니다. 차례상에 찾아오실 조상님은 다섯 분, 상의 이편에서 한 잔 올릴 자손은 남편 외에 나와 딸 뿐. 멀리 사는 동생이 가끔 참여하지만 그것도 일정치가 않으니 명절 차례라는 것도 머쓱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만 합시다”는 안했다. 나의 비폭력 무저항 니 맘대로 하세요 전략과 일중독(workholic) 남편의 “명절에도 일하고 싶다” 마인드가 결합한 결과라고나 할까.

4년 전 나는 남편에게 차례상은 ‘차례(茶禮)’인만큼 다과상으로 차려야한다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생선과 고기를 굽고 쪄서 내놓은 밥상이나 주안상이 아니라, 맑은 차와 함께 과일, 떡과 과자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경상북도 산골 출신인 남편은 의외로 실용주의자다.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의 기독교 가정에서 낳고 자란 나는 결혼 전까지 제사상 혹은 차례상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제사와 차례는 남편의 가정이 조상과 가정에 대해 지닌 가치관의 실제적 표현이라고 여겼다.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나 고개 숙여 목례하는 것이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제사와 차례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이 그의 가치관 표현에 휘둘리거나 얽매이는 것은 거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요즘 내 머릿속에는 세 여자의 이름이 들어있다. 김진영. 김지영. 민사린.

하기 싫은 일 안하고, 내 삶은 내가 주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는 ‘B급 며느리’ 김진영은 실제 인물이다(허락없이 인용함을 양해하시길). 사랑해서 만난 남자와 알콩달콩 잘 살아보려다 자기를 놓아버린 김지영. 그렇다. 『82년 생 김지영』의 그 김지영이다. 분명 자기도 남편만큼 일하는 맞벌이 아내인데, 시댁에 가면 가사도우미가 되어버리는 민사린, 출장 다녀온 사위와 저녁 같이하자는 시댁의 부름에 “내가 밥해야 하는 거 아니면 갈게”라고 거절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며느라기』의 며늘아기. 나는 이들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한가? 김진영 만큼 솔직하고 용감하지는 못했다. 김지영보다는 강했을까? 민사린이 은근 부러워하는 까칠한 단발머리 동서와 조금 닮은 데가 있으려나?

명절증후군은 내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 김진영을 전혀 안 이상한 여자로 만들고, 김지영의 자기 모습을 회복시키고 민사린과 그의 동서가 모두 당당하고 행복한 명절. 그것은 남의 눈에 우리 집 꽤 괜찮은 집으로 보이게 하려는 명절 오버질 없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나다.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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