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 웹툰이 되다
가정폭력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 웹툰이 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9.09 01:54
  • 수정 2018-09-11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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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가정폭력]

웹툰으로 본 가정폭력

 

여성의 눈으로 가정폭력을 다룬 웹툰들을 소개합니다.
여성의 눈으로 가정폭력을 다룬 웹툰들을 소개합니다.

[여성신문] 가정폭력은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폭력이지만, 여전히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여성의 눈으로 가정폭력을 다룬 웹툰 4편을 소개합니다. ‘가정은 안식처’라는 믿음을 깨고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어떻게 ‘가장 친밀한 폭력’을 낳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무엇이 피해자를 침묵케 하거나 폭력을 답습하게 하는지 그린 작품도, 가정폭력 이후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의 분투를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단지’ : 가족 내 성차별이 폭력·학대로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제공
웹툰 ‘단지’의 한 장면. ⓒ레진코믹스 제공

‘단지’는 삼남매 중 유일한 딸이다. 남성과 여성 간 성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났다. 딸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란 가사노동 담당이거나, 심부름꾼이거나, 아빠와 오빠의 비위를 재빨리 맞출 줄 아는 ‘센스’를 발휘하는 모습 정도다. 부모는 아들 챙기기에 급급해 딸에게 순종과 희생만 강요했다. 오빠는 동생을 존중하기는커녕 욕설과 발길질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하면 ‘버릇없는 X’ ‘철이 없다’라는 호통과 손찌검만 날아든다. 성인이 돼 독립해도 가슴 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일기장에 감춰둔 기억을 끄집어냈다.

2015년 레진코믹스에 연재된 ‘단지’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의 폭력과 정서적 학대에 시달린 여성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그린 웹툰이다. 생생한 폭력 묘사를 보고 ‘나도 그랬다’ ‘내 얘기도 그려달라’며 자신의 피해를 고백한 독자들이 많았다. 사연이 500여 편이나 날아들어 작가와 편집부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선정하는 국내 대표 만화상인 ‘2017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작가는 2016년 여성신문 인터뷰에서(http://www.womennews.co.kr/news/93163) “‘단지’ 연재는 어릴 적부터 형성된 자기혐오와 싸우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었다며, “아동 스스로 학대가 무엇인지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부모들에겐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규 교육에 포함해서 모든 국민이 결혼 전에 꼭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여중생A’ : 폭력에 맞서지 못하는 여성들

 

웹툰 ‘여중생A’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웹툰 ‘여중생A’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허5파6’ 작가가 네이버에서 연재했던 웹툰 ‘여중생A’는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학교에선 따돌림 당하는 10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장미래’는 생리대를 사려고 아빠에게 ‘생일선물로 1000원만 달라’고 했다가 “네가 태어난 것부터가 실수인데 선물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선물이냐”라는 폭언과 폭행을 당한다.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폭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남편의 폭력을 ‘부부싸움’으로, 자식에 대한 폭력을 ‘훈육’으로 부른다.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앞에 피해자들은 대부분 탈출구를 못 찾아 무력해진다. 미래는 대항할 힘을 내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감정을 힘껏 억누른다. 자신을 때리려는 아빠를 피해 방에 숨어 있다가 참다못해 오줌을 싼 적도 있다. 미래의 엄마는 남편의 구타를 온몸으로 견디며 말한다. “아빠가 좋은 사람인데 술을 먹어서… 실수한 거야, 실수.” 

“행복한 감정에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나에겐 주제넘은 일이란 걸 잊으면 안 돼”라고 되뇌는 미래는 온라인 게임에만 몰두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게임 길드원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기려던 미래가 우연히 한 길드원을 직접 만나며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해자가 죽어서야 기나긴 가정폭력이 끝난다는 내용을 두고 “씁쓸하지만 몹시 현실적”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2016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고, 최근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에 올랐다. 

‘땅보고 걷는 아이’ : 폭력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웹툰 ‘땅보고 걷는 아이’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웹툰 ‘땅보고 걷는 아이’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겨울’은 언뜻 보기엔 평범한 10대 여성이다. 잘 웃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만 종종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들에 홀로 몸서리친다. 겨울의 친엄마는 남편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다 이혼한 후 생활비도 못 받고 홀로 힘들게 딸과 아들을 길러왔다. 엄마는 툭하면 자식들에게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휘두르고,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pastel_aurora’ 작가가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땅보고 걷는 아이’는 가족 내 폭력과 학대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공분을 일으킨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환영받지 못한 임신·출산을 한 여성이 다시 자식들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가정폭력은 한 ‘악마’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작가는 “가정폭력은 단순히 가정 내에서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내용”이라며 “가정폭력이 주는 고통과 가정폭력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쉼터에 살았다’ : 가정폭력 벗어난 여성의 생존 분투기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네이버와 다음에 연재 중인 웹툰 ‘쉼터에 살았다’는 ‘쉼터생활툰’을 표방한다.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22세 여성의 쉼터 생활기를 그렸다. 주 3회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해 월 50만원 정도를 벌어 “쓰레기장 같은 고시원 방”에서 7개월째 살아가던 주인공은,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일해도 빈곤과 열악한 주거 환경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쉼터를 찾아간다. 

실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주목한 작품은 많지만, ‘가정폭력 이후’의 삶을 위해 분투하는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은 많지 않다. 현재 작가의 “생계” 사정으로 연재가 잠시 중단됐지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하지만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저도 비슷한 처지였다. 응원한다” 등 적지 않은 관심과 지지를 얻었다. 작가는 “모든 가정폭력피해 청소년과 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더보기▶ 왜 매맞는 여성은 가정폭력을 합리화할까 (http://www.womennews.co.kr/news/14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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