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사진계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말하다
[기울어진 극장] 사진계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말하다
  • 모델 A
  • 승인 2018.09.08 23:04
  • 수정 2018-09-1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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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계에서 성폭력을 겪은 모델 A씨가 9월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본인 동의를 얻어 소개합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사진계에서 성폭력을 겪고 법적 싸움에 나선 모델 A씨는 “사진예술 분야 사람들이 모델을 일차원적인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예술을 하는 동료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진계에서 성폭력을 겪고 법적 싸움에 나선 모델 A씨는 “사진예술 분야 사람들이 모델을 일차원적인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예술을 하는 동료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저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1년 동안 사진모델 활동을 했습니다. 여러 사진작가들과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고요. 대부분 컨셉을 잡지 않고 자유롭게 사진촬영을 진행하는, 소위 개인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작가 개인들이 가진 기술로 저의 표현방식을 기록하는 작업물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창조적인 작업을 진행하면서 저는 사진의 2차가공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성적대상화를 겪었으며 심지어는 성폭력이라는 크나큰 인권침해도 겪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진 결과, 저열한 이기심의 희생양이 되고 심지어는 원치 않는 촬영을 당하고 사진이 유포됐습니다.

개인작업의 이점은 동등한 주체로서 예술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작가들은 모델을 단순한 물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체로 포즈를 취할 때 자신의 친구를 데려와 구경시키기도 했습니다. 너무나도 수치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진작가들은 제가 성폭력을 저질러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성폭력을 저질렀으며, 저를 사진작가 본인의 명성과 돈을 위해 가차 없이 쓰고 버리는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마추어 사진업계의 문제점은 사진기 앞에 직접 서는 모델의 권리가 자유로운 촬영이라는 명목하에 보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진 모델로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 뜻이 좌절됐습니다. 좋은 사진을 남기겠다는 마음 이상으로 사진작가들의 개인적 욕망이 모델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입니다. 누드 촬영의 의미는 성교에 대한 허락이 아닙니다. 모델이 사진 유포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진작가는 사진을 유포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나 서로 콘셉을 조율해 가는 개인작업에서 모델의 목소리가 지워지면 안 됩니다. 독단적인 사진촬영과 유포는 폭력입니다. 

또한 저는 사진작가들의 모델 성적대상화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평판이 나빠지고 웹상에서 성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을 겪었습니다. 사진작가들의 일관적인 작업 스타일, 즉 성적대상화로 인해 저는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사진작가에게 최초 촬영 컨셉과 다르게 성적대상화한 모습으로 사진을 편집해 유포한 점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저를 멋대로 이용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저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는 묵살됐습니다. 사진 속의 저는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을 자퇴하고 우울증에 걸려 약을 먹습니다.  

저의 경우 어린 나이부터 변태적인 행위들에 쉽게 노출됐기 때문에 폭력을 인지하기 어려운 심각한 상황에 놓였던 것이지만, 추후에는 제가 사랑하는 사진예술 분야 사람들이 모델을 일차원적인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예술을 하는 동료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창조와 표현을 사랑합니다. 사진모델을 그만두고서도 예술을 미워한 적 없습니다. 사진계 성폭력 피해자로서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려 합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해를 가하는 것은 예술 이전에 사람 대 사람의 차원에서 저지르는 심각한 폭력이다. 그렇기에 해를 가하는 예술에 동조하는 사람은 공범이다.”

타인의 고통을 박제하는 예술에는 비열함이 묻어 있습니다. 비열함이 느껴지는 것은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관객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제 관객을 위해 그리고 세상에 펼쳐질 새로운 담론을 위해 저는 비열해지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미래의 예술가로서 일상의 포르노 전반에 대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가을 아침처럼 사랑할 것, 좋아하는 노래처럼 아끼고 보듬을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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