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상류사회’가 불쾌하다
[기울어진 극장] ‘상류사회’가 불쾌하다
  • 박우성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9.05 10:15
  • 수정 2018-09-05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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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류사회’ 의 한 장면.
영화 ‘상류사회’ 의 한 장면.

‘속 빈 강정’ 문제의식

노골적 이미지로 포장한다고

예술적 성취 되진 않아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상류사회’는 상류층의 허위와 속물성을 조망하는 의도로 제작된 영화다. 중산층 부부가 있다. 미술관 부관장인 아내와 대학교수인 남편은 상류층을 꿈꾼다. 그러던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아내에게는 관장의 자리가, 남편에게는 국회의원 자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를 쉽게 허락할 세상이 아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윗자리를 향한 아랫자리 부부의 쟁투기 정도로 요약되는 이 영화가 실질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리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세상의 절대자, 즉 상류층의 실체다. 스스로를 선택받은 씨앗이라 생각하는 그들은 권력을 보존하는 문제 앞에서 폭력적이고 야비하며, 무엇보다 위선적이다. 상류층으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시선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상류층의 위선과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 '상류사회'의 얼개인 셈이다. 

그러나 ‘상류사회’에는 방금 정리한 것 이상의 무엇이 딱히 발견되지 않는다. 상류층의 허위와 속물성이 영화의 여러 장치들과 맞물려 무게감 있게 구현되는지 의문이다. 구현된 문제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동시대의 폐부를 찔러 성찰의 장으로 이끌기보다는 풍문 수준으로 가볍게 휘발되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상 이 영화를 채우는 것은 상류층과 관련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질타, 설교, 계몽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류사회’를 이 자리에 가지고 온 진짜 이유는 아니다. 이 영화에 대한 위화감은 바로 이 별 것 없는 문제의식을 그러나 뭔가 솔직하고 용감한 것인 양 포장하기 위해 적극 끌어들이는 이미지들과 그것이 유발하는 자기모순에서 비롯된다. 따져야 할 것은 상류층 고발이 아니라 내실 없는 문제의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영화가 끌어들이는 어떤 치장술이다. 문제는 그 치장술이 영화라는 매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식, 즉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의 전시에 치중된다는 점이다. 

상류층을 대표하는 재벌 회장은 자리에 어울리는 진지한 고민 대신 오로지 허세로 가득한 성욕에 사로잡혀 있다. 당연히 상류층이라고 성욕이 없을 리 없다. 실제로도 우리는 한국사회 상류층의 섹스 스캔들 몇 개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 밖 현실에 그런 스캔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영화 안에 끌어들여 거의 유일무이한 극적 동력으로 삼는 문제는 완전히 별개다. 재벌 회장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상황을 딱히 고려하지 않고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치장술만을 선택하는 순간, 한국사회의 복잡한 계급성은 오로지 성욕의 문제로만 단순화되고 만다. 계급성의 복잡한 타래를 성기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이 이상한 애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섹스에 몰입한 늙은 남성의 나체는 재벌 남성의 탐욕을 들춘다는 맥락에서 그리 새로운 기표는 아닐지라도 수긍 가능한 수단일 수 있다. 타락한 성욕을 행위 예술인 것처럼 자위하는 재벌 남성의 몰골은 분명 이 영화가 겨냥하는 최악의 조소거리다. 그러나 이런 의도였다면 그것만 전시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으로 늙은 사내의 몸과 뒤엉킨 젊은 여성의 신체를 집중적으로 탐닉한다. 이렇게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카메라 시선의 욕망이 진짜 향하는 곳은 늙은 남성인가, 젊은 여성인가, 아니면 자극적인 섹스 장면 자체인가.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상류층의 위선이 고발되는 풍경이 아니라 영화와 포르노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노골적인 이미지만 있으면 속 빈 강정의 문제의식이 유효한 예술적 성취가 되는 시절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영화와 포르노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부각되는 어떤 불편한 진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의 계급 차이가 아니라 노출 수위를 기준으로 정렬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계급 차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노골적인 베드신은 철저히 조연급 여성 캐릭터, 그러니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들의 몫이다. 유명세와 노출의 강도가 반비례하는 것이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상류층의 속물성을 고발한다면서 정작 영화 스스로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의 캐릭터와 배우를 전시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류층의 위선을 들추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바로 그 상류층의 위선과 포개지는 자기모순의 풍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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