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본질은

‘결정할 수 있는 권한’

판결에 사회적 변화

반영하는 구조 만들어야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관련 1심 판결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젠더폭력이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한국사회가 그냥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이 실망과 분노로 이어진다.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권력이 없음에 허탈해한다.

권력의 본질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듯한 대통령은 임기 5년 선출직이다. 그것도 사실상 임기 첫해 ‘그림 그리기’ 과정과 마지막 해의 레임덕을 고려하면 3년짜리 권력이다. 정부에서 무슨 정책을 발표해도 그 중 상당수가 국회에서 법률 개정이나 제정이 없으면 실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던지고 기대했던 만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회의원 역시 임기 4년의 선출직 권력이다. 대통령 임기와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하면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하는 혹은 일할 수 있는 임기는 사실상 2년이다. 첫해 지내면서 입법활동 방향 잡고 좀 적응했는가 했는데 임기 3년이 지나간다. 그러면 마지막 1년은 사실상 그 다음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그래도 선출직 권력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으면 될 수 없다. 생활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얻은 표를 먹고 살기 때문에 사회변화와 국민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되기를 약속했지만, 나는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여부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에 반응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변화에 반응해야만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선택이 중요하다. 성차별 이슈에 페미니즘으로써 반응해도 잃을 표보다는 얻을 표가 더 많은 정도로 사회변화가 진행되었다고 판단한 결과다. 만약 안희정 전 지사 1심 판결을 대통령이 했다면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적극적 법률 해석을 통해 유죄를 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출직이 아닌 사법부 권력이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동기부여 구조는 없다. 법률에 따라서만 판결한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 알 사람은 다 안다. 판사의 법률적 지식에 외부의 전문성과 경험이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없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의 법인식과 해석이 판사의 그것과 매우 다르게 된다.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튀는 판결’을 하는 판사가 있을 뿐이다.

판결 자체에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법률적 지식 뿐 아니라 생활의 경험, 타 영역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늘 반영되는 판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흉내낸 배심원 제도 외에도 판사들의 자리를 다양한 영역의 비법률 전문가와 나누는 제도가 구조화되어 있다. 아마 한국의 사법부 관계자 상당수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해외 연수들 많이 다니시지 않는가? 독일의 경우 비법률 전문가가 판결에 참여하는 명예재판관(Laienrichte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판결 과정에서 명예재판관 수가 직업판사 수보다 적다. 명예재판관의 전문성과 경험을 반영하지만, 판결의 독립성은 판사가 갖는 것이다. 독점적 권력이 가져올 수 있는 사법부 화석화를 예방할 수 있는 수혈을 하는 차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판검사를 선출직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 인기보다 법률지식이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적 지식으로만 무장한 권력집단이 사회변화를 거스르고 가부장적 권력의 공고한 토대로서 기능하는 구조는 변화시켜야 한다. 독일의 명예재판관 제도를 위시하여 가부장적 사법부 권력 구조를 분산·변화시킬 수 있는 목소리를 높일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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