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빚을 내서 소비하나

주말에 백화점에 들렀다. 세일 기간이라서 백화점 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 경품과 사은품 코너였다. 세일 기간만 되면 백화점 인근 거리가 교통 혼잡을 겪어야 하는 이유를 알 만 했다. 수 십만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그토록 쉽게 신용카드를 꺼내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만 놓고 본다면, 경기 침체의 사각지대다. 실제로 백화점 업계는 요즘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9·11 테러 직후에 매출이 줄지 않을까 걱정했던 백화점 업계는 잇따라 세일과 경품·사은품 행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테러 직후 10% 가량 줄었던 매출은 한 달도 채 안돼 20% 이상 늘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9·11 테러보다 김치 냉장고(대표적인 경품)가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그러들 줄 모르는 소비는 현재 우리 경제의 최대 미스테리이자 딜레마다. 국내 소비는 위축된 수출을 대신해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수출은 올해만 16%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3% 가까운 성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소비 덕이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소득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소득이 증가해야 소비가 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정설이다. 물론 소비 성향(소득에 대한 소비의 비율)이 증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그럴 수는 없다.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할 따름이다.

만일 벌이가 늘어서 씀씀이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면, 빚을 내서 하는 외상 소비가 늘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지난 주, 올해 8월 이후 우리 경제의 회복이 바로 이 외상 소비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는 경제 동향과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남는다. 요즘 사람들은 왜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늘리는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금리가 크게 내려, 돈을 저축할 유인이 없어져서다. 달리 돈을 벌 길도 없다. 그리고 돈을 빌려 쓰기도 쉽다. 그러니 무조건 쓰고 보자는 식이다. 하긴 상류층 사이에서는 앞뒤 안 재고 쓰자는 ‘묻지마 소비’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라면 우리 경제는 장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 동안의 고도 성장 과정에서 높은 저축률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축적하는 데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건전하게 유지해온 요소였다.

다른 한 편으로 사람들이 조만간 소득이 늘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늘어날 소득을 앞당겨 소비할 가능성도 있다. 하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기 회복론이 솔솔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이 경우라면 문제가 보다 빨리 가시화될 수도 있다.

만일 지금의 소비 호조가 미래에 쓸 것을 앞당겨 쓰는 것이라면, 이런 추세는 지속될 수 없다. 미리 컴퓨터와 자동차를 샀는데, 내년에도 이런 내구재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비 호조에 의한 경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 경제의 회복으로 수출이 급격히 살아나지 않는 한 경기는 우리가 기대해주는 것만큼 빨리 살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이 경기 회복이 V자형이 아니라 U자형으로 완만히 살아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의 소비 호조가 우리 경제 최대의 미스테리이자 딜레마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방희/경제칼럼니스트MBC<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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