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여성신문사에 대학생 독자 6인이 모여 최근 언론의 젠더 이슈 보도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7일 여성신문사에 대학생 독자 6인이 모여 최근 언론의 젠더 이슈 보도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7일 여성신문사서 대학생 독자 6인 간담회

최근 언론 젠더 이슈 보도 관해 논의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젠더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의 자세가 많은 주목과 비판을 받는 이유다. 보도 논조에 따라 때론 첨예한 논쟁이, 때론 공분이나 광풍이 일기도 해서다. 젠더 이슈를 다룬 보도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공유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20대 여성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7일 여성신문사에 젠더 이슈에 관심 많은 대학생 독자 6인이 모였다. 참석자들이 사진과 실명, 소속 학교명 등을 공개하길 원치 않아 모두 익명으로 보도한다.

“‘불륜 프레임’ 강조 ‘안희정 무죄’ 보도, 2차 가해

판결 맥락·영향 살피지 않은 보도는 직무유기”

참석자들은 먼저 최근 ‘안희정 무죄’ 판결에 대한 언론 보도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일부 보도가 심각한 2차 피해를 낳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몇몇 보도가 법정 진술이나 판결문을 인용하면서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부각해 피해자를 의심케 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여론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많은 보도에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 쓰여 2차 가해를 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여러 언론에서 두 사람 간 ‘카톡 대화’를 ‘사담’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고용 관계에 있는, 권력관계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결코 사적일 수 없다. 그러나 ‘사적 대화’라면서 문자 등 대화 내용을 그대로 보도해 정말로 이들의 관계가 권위 없는 평등한 관계인 것처럼 묘사했다.”

“언론이 익숙한 ‘불륜’ 프레임을 만들고 이 사건을 그 프레임으로 보도하면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불륜’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게 됐다. 문제의 본질인 ‘위계’에 주목하는 기사들은 많이 못 본 것 같다.”

이번 1심 무죄 판결 내용을 보도하면서 선고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칠 뿐, 판결의 맥락이나 영향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판결에 대한 법리적 비판이나 숨은 문제들을 끌어내지 않고 ‘무죄, 끝’ 식의 단순 보도는 위험하다. 그러한 보도가 판결의 요모조모를 분석하거나 그 파급효과 등에 주목하지 않고 ‘안희정은 죄가 없다, 이겼다’라는 단편적인 인식을 낳는 데 일조했다.”

“‘무죄판결 나올 만했다’ ‘피해자는 왜 졌는가’에 집중한 보도는 많았으나, 피해자 측의 비판 의견이나 이 판결이 미칠 영향에 주목한 보도는 적었다. 완전히 기울어진 느낌이었다.”

“사실 전달은 중요하지만, 사실만을 ‘지극히 객관적으로’ 전달하다 보니 그것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안희정이 무죄를 받은 이유’에만 집중한 언론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탈코르셋’ 보도 늘며 대중적 페미니즘 이슈로 부상

‘극단적 행동’ 보도보다는

여러 여성 억압 살피는 넓은 시야 기대

참석자들은 ‘탈코르셋’ 이슈를 다룬 보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최근 많은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페미니즘·젠더 문제에 관심이나 지식이 많지 않은 부모님 등 가족과도 좀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탈코르셋 운동에 나선 여성들을 ‘극단적’이라고 묘사한 보도 때문에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나 비난도 심해졌다며, ‘언론이 페미니즘 이슈를 보도할 때 조금 더 폭넓은 관점을 보여주길 바란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요즘은 중년 여성들도 TV 뉴스보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기사를 많이 보시더라. 엄마가 먼저 제게 ‘탈코’ 얘기를 하시고, 조금씩 받아들이셔서 놀라웠다.”

“언론이 (‘탈코르셋’ 등 페미니즘 이슈를 보도하면서) 단편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고 판단을 독자에게 넘기면 좋겠다. 사람들이 기사를 보면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갖기보다는) 스스로 고민하며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언론이 더 많은 세대의 여성들이 겪는 ‘코르셋’을 살피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저희 어머니에게 ‘코르셋’은 꾸밈노동이라기보다 가사노동이다. 연령이나 배경에 따라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으로 범주를 넓히면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여성주의적 시각 = 편협하다’?

세상의 절반 고려하는 중요한 접근

참석자들은 페미니즘·젠더 관련 보도를 두고 “편협한 시각”이라고 부르는 데에 반대했다.

“저는 여성학을 접한 이후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다. 어떠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페미니즘 관점으로 보면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은 그동안 주목받고 존중받지 못했지만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는 중요한 접근이다. ‘페미니즘 이슈에 주목하는 건 편협하다’고 여길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그런 시각을 더 발굴하고 갈고 닦을 의무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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