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여성을 단도직입적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 <꽃섬>의 도입부는 충격과 긴장으로 터질 듯 팽팽하다. 10대의 여자아이는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을 내려버린다. 뮤지컬 가수인 20대 여자는 후두암 선고를 받고 지상에서 그녀의 삶을 동반했던 소지품들을 정리한다. 30대 여자는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70대 노인과 섹스를 하다가 남편과 경찰서에서 마주서게 된다. 특별한 상상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낙진처럼 떠도는 에피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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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낙진처럼 우연히 지나가는 행인의 어깨에 내려앉을 수도 있는 이 이야기들은 신문에, 방송에, 영화에 이야기로 소개되기 이전에 네가 겪은, 내가 겪은, 그리고 그녀가 겪은 어떤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은 그 사건을 겪은 사람의 경험이 되기 위해 이해 혹은 해석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너무 혹독하고, 너무 끔찍하고, 너무 무서워서 자신을,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세 여성이 만나서 ‘꽃섬’을 향해 떠나는 여행은 그러므로 그녀들이 자신의 경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메라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가차없이 그녀들의 얼굴에 가느다랗게 밭고랑처럼 새겨져 있는 두려움과 외로움, 막막함을 클로즈업으로 드러낼 때 나는 초월로 넘어갈 수 없는, 넘어가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보다 넓은 시간여행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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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나, 유진, 옥남 - 그녀들이 함께 꽃섬을 향해 나아가며 서로의 경험을 이해해나갈 때 그 속에서 점차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죽음이다. 이 죽음이 무덤 같은 큰 눈으로 그녀들의 눈물 몇 방울과 고열과 시린 발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덤이 섬이다. 당신이 꽃섬이라고 부른다면, 그렇다, 꽃섬이다. 영화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의 환타지 공간 안에서 검푸르게 떠오르곤 하던 배는 이 무덤, 죽음, 꽃섬의 복합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고열에 시달리던 유진이 꽃섬에 도착해 하늘 높이 끌어올려진 배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결국 그녀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 즉 ‘꽃섬’에 도달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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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꽃섬’은 어디에도 없으면서 마음속에, 관념 속에만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살해하고 그 육신을 먹을 수 있는, 그래서 반항 속의 동일시를 이루어낼 수 있는 아버지가 부재하다고 이 나라 아들들은 탄식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실제로 키운 어머니를, 여성성을 회고한다. 아들들의 어머니 ‘탐구’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어머니는 죽음의 끔찍함을 삶 속에 시퍼렇게 담고 사는 지상의 사람이지 본성적으로 살리기에만 더 능수능란한 마술사는 아니다.

딸 아이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는 어머니 모습은 현재 한국 사회의 특정한 문화적, 정치적 상황이 낳은 결과물이다. 초월적 이미지를 통해 ‘구원의 모성 그 자체’ 혹은 ‘여성성 그 자체’라는 관념으로 도약하기 위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또 다른 아버지, 즉 서구 아버지의 방법론을 불러올 때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황이 만들어 내는 모성의 모순들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만다. 이 땅에 아버지가 없다고 해도 저 다른 땅에서 대체적 아버지를, 형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아들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치열한 이 땅의 어머니에 대한 진정한 이해, 즉 육화된 관념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영옥/ 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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