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국가가 방조한 ‘성매매’, 쇠창살에 갇힌 여성들
[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국가가 방조한 ‘성매매’, 쇠창살에 갇힌 여성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7.11 14:26
  • 수정 2018-07-1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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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④군산 대명동·개복동 화재 참사

성매매 강요당한 여성 19명

쇠창살 쪽방에 갇혀 질식사

성매매방지법 제정 계기 마련

 

2000년 10월 13일자 여성신문 제 596호.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직후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00년 10월 13일자 여성신문 제 596호.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직후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쇠창살에 갇힌 20대 여성 다섯 명이 화재로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은 처참한 성매매 여성의 인권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성매매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줬다.

참사는 2000년 9월19일 오전 9시15분께 일어났다. 전북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성매매 업소)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층 배전판 누전이 화재 원인이었다. 출동한 소방관들은 10여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건물 안에 있던 여성 5명이 질식사했다. 건물 출입문 밖에 잠금장치가 있었고 2층·3층 창문에는 모두 쇠창살이 달려 있어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상가 건물처럼 보이지만 2층은 1평 남짓한 7개의 쪽방으로 개조된 불법 성매매 업소였다.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있고 내부 통로는 겨우 사람 한 명만이 오갈 수 있었다. 환기구나 비상구따위는 없었다. 쪽방은 여성들에게는 감옥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화재사건으로 묻힐 수도 있었다. 당시 경찰도 화재예방시설 미비에 초점을 두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희생된 여성의 일기장을 통해 은폐된 진실이 드러났다. 일기장에는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폭력과 욕설에 시달렸다고 다른 곳으로 팔려갈까 두려워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소개소를 통해 팔려온 여성들은 빚으로 인해 매일 화대의 절반을 업주에게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날고 싶다. 훨훨 새가 되어 꽉 막힌 곳을 벗어나. 베란다 중앙에 있는 새장을 보았다.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날 보는 것만 같았다. 창살 틈으로 새가 말한다 짹짹. 그 모습은 내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남들이 알아들으면 어찌할 방법을 가르쳐줄 텐데. 아무도 모른다.” -대명동 화재참사 희생자의 일기 중

“항상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꿈꿔. 그때 제일 먼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너와 울 언니 내 동생 하루빨리 자유라는 걸 되찾고 싶어. 혼자서 목욕탕 가고 슈퍼 가고 커피숍 가서 창가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근데 OO야 내가 여기서 벗어 날 수 있을까?” -대명동 화재참사 희생자의 일기 중

 

전북 군산시 월명동 산돌갤러리에서 2002 개복동 기억. 나비자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02년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일기장
전북 군산시 월명동 산돌갤러리에서 '2002 개복동 기억. 나비자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02년 개복동 성매매업소 화재참사에서 희생당한 여성의 일기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00여개 여성·시민단체 대책위 구성

당시 여성신문(2000년 10월 13일 여성신문 제 596호)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유린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심층보도에 나섰다. 경찰과 업주와의 밀착 의혹도 제기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군산역 앞 파출소에서 100m 정도의 거리였다. 건물 벽에는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팻말이 군산시장과 경찰청장 명의로 돼있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이튿날 담당형사는 “여성들이 감금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증거가 없고 증인도 없으니 당신이 수사해 보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했다. 출구조차도 잠금 장치가 돼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수사 결과와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희생된 여성들이 일을 할수록 오히려 빚이 쌓이는 악순환적 구조에 갇혀 있었음이 드러났다. 업소를 전전하며 늘어난 선불금 빚은 성매매를 하며 갚아나가야 했지만, 여성들의 수입은 다시 숙식비와 각종 벌금, 선불금 빚 이자로 업주에게 되돌아갔다. ‘영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옷 구입, 세탁비, 미용실 등 지출도 모두 여성들의 몫이었다. 게다가 업주가 관할 경찰서에 상납금을 바쳐왔다는 사실도 생존자 증언으로 밝혀졌다.

여성신문은 성 산업을 방조하고 조장한 ‘국가적 책임’을 물었다. 군산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00여개 여성·시민단체는 ‘군산시 윤락가 화재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수사와 관련자 엄중 처벌, 정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업주들이 매매촌 여성들을 감시·감금·폭행하며 장기간 불법영업을 해 온 것은 실무적 배후실세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1996년 윤락행위방지법 개정안 시행이 들어간 이후에도 성매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배금자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전국 매매춘 조직에서 행해지는 매매·감금·폭행 등 극단적 인권유린의 실상을 묵인해 온 국가와 공무원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또 ‘성매매방지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2000년 12월 29일 제 607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가장 큰 책임은 매매춘을 방치·방조하고 있는 국가”라며 국가를 상대로 공익소송에 나섰다(2000년 10월 6일 제595호).

여성신문은 “매매춘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 삼는 ‘윤락’이란 용어는 ‘성매매’로 대체돼야 한다”며 성매매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를 촉구했고, 여성운동권에서 간과돼 왔던 성매매 문제를 “운동 중심에 세우자”는 주장을 제기했다(2000.10.13. 596호).

 

2002년 1월 29일,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업소에서 난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사망. 이에 같은 해 전북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한 군산개복동화재참사대책위가 개복동에서 여성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활동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2002년 1월 29일,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업소에서 난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사망. 이에 같은 해 전북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한 군산개복동화재참사대책위가 개복동에서 여성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의 활동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1년4개월 만에 또 다시 ‘참사’

감금과 폭행, 강요 등에 의한 성 착취 구조가 드러나고 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1년 4개월 뒤 군산 대명동에서 불과 1km 떨어진 개복동에서 대명동 화재참사와 복사판인 사건이 발생한다.

2002년 1월29일 오전 11시45분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아방궁’에서 카드 단말기 누전으로 불이 났다. 1층에서 잠을 자던 여성 14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숨졌다. 화재 발생 원인은 카드 단말기 누전이었지만, 대형 참사의 원인은 또 다시 감금 때문이었다. 1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하려면 2층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2층으로 통하는 철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쇠창살은 사라졌지만 합판과 스티로폴로 창문을 막아놓은 상태였다. 바깥으로 나가는 현관문도 밖에서 잠겨 있어 피해자들은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질식사했다. 대명동 참사와 마찬가지로 업주와 경찰의 유착도 드러났다.

성매매 방지법은 19명의 여성들의 죽음에 빚진 뒤에야 제정됐다.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 진영은 대대적인 법 제정 운동에 나섰고 2002년 조배숙 의원을 통해 발의된 성매매방지법안은 2004년 3월 2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로 제정돼 같은 해 9월 23일 시행됐다. 법 시행 첫날 최은순 변호사, 이정희 변호사 등이 유족을 대리해 국가와 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결과도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 했다(2004.10.8. 797호).

 

성매매 ‘수요’ 차단해야

대한민국의 성매매 산업 규모는 6조8604억원으로 추정된다(2010년 여성가족부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 성매매방지법이 올해로 시행 14년을 맞지만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줄지 않는다.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 법은 태생부터 ‘양벌 규정’, 즉 성 구매 남성과 성 판매 여성 모두를 처벌하는 규정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성매매 행위를 ‘자발이냐 강제냐’를 구분하고, 입증 책임도 성매매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은 인신매매, 위계나 위력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선 성 판매 행위를 자발적인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해 경찰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성매매 여성이 추락사한 뉴스가 드물지 않게 보도된다. 반성매매 여성인권 운동 진영은 성매매의 근본 원인인 수요를 차단해야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성매매 수요 차단 전략인 ‘노르딕 모델’이 성매매 근절을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1999년 스웨덴에서 시작한 성매매법(노르딕 모델)은 성매매가 ‘젠더 폭력’이라고 인식하고 성매매 여성은 처벌 대신 탈성매매 할 수 있도록 돕고 성매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성 구매자와 업자에 처벌을 집중하자는 취지다.

스웨덴에 이어 성매매를 합법화했던 캐나다는 2014년 노르딕 모델로 전환했고, 프랑스는 2016년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유럽의회와 유럽위원회는 2014년 각 국가에서 노르딕 모델을 채택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에서도 노르딕 모델 도입 요구가 거세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에서는 “노르딕 모델을 도입하자”는 청원이 올라 6만여명이 참여했다.

 

* ‘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선정에 도움주신 분들

김경애 여성신문 편집위원·여성학자

김양희 젠더앤리더십 대표

김엘리 명지대 객원교수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박화숙 여성신문 편집위원·전 서울신문 부국장

원혜정 교육컨설팅 전문가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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