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시면 안됩니다] 사과 했는데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과 했는데요?
  • 박찬성 변호사 ‧ 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18.07.13 13:33
  • 수정 2018-07-13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 됩니다 – 19]

가끔 이런 얘기를 하는 가해자들이 있다. “사과 다 하고 끝난 건데요? 그거 전에 이미 정리된 문제에요.” 사과까지 하고 마무리했으니 더 거론할 이유 없다는 취지일 게다.

참 간편하다. 사과하기만 하면 기왕에 있었던 일이 깨끗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는 걸까? 많은 피해자들이 징계를 위한 조사·심의나 수사와 재판 등 정식의 처리절차 종결 이후에도 또 다시 심란해 하며 분노할 때가 있다. 피해자들은 사건으로 인한 상처로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활보하고 다니며 잘 살고 있을 때다. 이런 모습에 분노하는 피해자들을 여럿 보았다.

기관 차원에서 가해자에게 응보적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에게는 조력을 제공하면서 2차 피해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고자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내 힘겨워하던 피해자가 끝내는 부담감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고 말았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주변인들이 어떻게든 도움을 준답시고 애는 썼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안타깝다. 제아무리 주변에서 신경을 써 준다 하더라도 이처럼 피해자에게는 늘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런데 뭐라고? 피해자는 이렇게까지 힘겨워 하고 있는데, 그리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나가고 있는데, 기껏 한다는 소리라곤 사과하고 마무리된 것이니 다 끝난 거라고? 대체 무얼 잘못 먹어야 이 정도의 망발을 할 수 있는 걸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곤란하다. 숭례문 옆 동네 방망이 깎는 노인을 찾아가고픈 마음을 우리로서도 억누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는가! 바라건대 저희에게 잘못한 자들이 설령 있더라도 이들이 잘못에 잘못을 더하는 일만큼은 부디 없도록 하여주셔서, 저희들을 자력구제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을 악으로 이겨내고픈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를 구해주시길.

 

우리 법원은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형사처벌에 관한 판결이다.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에 그 선고가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정해진 유예기간을 무사히 경과하게 되면 그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는, 형의 선고가 가지는 법률적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일 뿐,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 자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 자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과했으니 다 끝난 거 아니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오히려 거침없이 반문하는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같은 논리와 원칙에 입각해서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다 끝났다고?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모든 가해자가 천편일률적으로 이렇게 뻔뻔스러운 건 절대로 아니다. 필자가 만나 보았던 가해자 중에는 더 이상 미안해하기 힘들 정도로 미안해하면서 자신이 이런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도저히 받아들이질 못하고 부끄러워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 진짜 속내까지야 신이 아닌 이상 어찌 다 알 수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가식적으로 꾸며낸 모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록 잘못을 범하기는 했더라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판단준거 가운데에는 비례성의 원칙(proportionality)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안에서 그 경중을 논하지 않고 예외 없이 파면·해임 등 배제적 조치를 내리기는 어렵다. 한 번의 잘못만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끝장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번의 잘못이었을 뿐인데 너무 지나친 조치가 내려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항변은 오로지 가해자의 진심어린 뉘우침과 반성이 전제되었을 때에나 비로소 제대로 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도 하고 있지 않은데도 주변에서 이런 무신경한 말을 남발해서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아, 그러시군요! 예전에 이미 사과 하셨다구요? 어이쿠, 이런! 몰라 뵈어서 죄송해야 합니까? 부탁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이건 법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면 그런 말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하기야,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식과 상식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는지 모르겠지만.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