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시선] 양성평등주간 - 기념이 아닌 기억하는 시간
[정재훈의 시선] 양성평등주간 - 기념이 아닌 기억하는 시간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7.04 14:08
  • 수정 2018-07-05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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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주간은 과거를 

잊지 말자는 차원에서

‘기억’ 되새기는 시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곳곳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솔직한 심정은, 하루라도 빨리 양성평등주간을 더 이상 기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평등하지 않은 현실의 거울이 양성평등주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기념을 하는 이유는, 기념이기보다 기억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상당수의 사람이 “(과거에 비해) 여자 살기 좋은 세상 됐다”고 생각하면서 이 무슨 호들갑이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 살기 좋은 세상’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니 더 심각해진 성차별 현실을 기념이 아니라 기억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마련된 어느 자리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젠더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경험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자리를 함께한 지역의 ‘여성보호 담당’ 경찰관이 “한국은 경찰이 총기를 휴대하지 않아도 된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 기간에 경찰이 자동소총과 장갑차로 무장한 브라질 같은 나라보다 치안 상태가 더 좋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앞서 여성들이 말한 젠더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좀 지나칠 수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었다. 본인 자체도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대로 분위기를 좀 깰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전제를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일단 한국의 치안 상태가 브라질보다 훨씬 좋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총 쏘고 강도질하는 폭력배들도 없는데, 여성들이 공연히 불안에 떨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게다가 경찰은 여성을 ‘보호’해주기 위해 각종 대책을 만들고 노심초사하고 있음도 알았다. 소개된 공식 명칭 자체가 ‘여성보호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혜화역에 모였던 여성들에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정 그렇게 불안하면 브라질에 한번 가서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체험해 보라는 조언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얻었다. 이제 그만 비꼬고 진짜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 기억 없는 기념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주간을 ‘점점 여자 살기 좋은 세상’으로서 기념하기 때문이다. 남자 형제의 출세를 위해 진학도 포기하고 공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여성들이 사실상 사라진 세상을 기념한다. 여성들이 신입 공무원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현실을 기념한다. 그러나 여성이 반쪽인간 취급을 노골적으로 받던 그 시절에 대해 기억은 하지 않는다. 1945년 1월 27일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을 매년 기념하는 이유는, 더 이상 인종청소를 하는 나찌 정권이 없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나찌의 잔인한 학살행위를 ‘기억’하고 앞으로 그러한 정권의 존재를 용납하지 말자는 이유에서 기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성평등주간은 성차별이 과거에 비해 감소했음을 ‘축하’ 기념하는 기간이 아니다. 과거의 성차별 현실을 잊지 말고 절대 그 과거로 돌아가지 말자는 차원에서 ‘기억’을 되새기고 다짐하는 주간이다. #미투 운동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기억을 더욱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젠더폭력 피해자로서 여성을 ‘보호’해온 과거를 #미투 운동은 거부하면서 동시에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보호 대상’으로 여성에게 “네가 먼저 조심했어야지”라는 젠더폭력 가해자와 그 동조자들의 행태를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요구하고 있다. “가해자 너희가 변해라. 스마트폰을 디지털흉기로 사용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변해라.”

#미투 운동은 은폐됐던 젠더폭력의 과거를 우리 기억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금년 양성평등주간이 예년과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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