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니 작업 안하겠네”

여성작가 향한 편견 여전

가정이라는 사적영역으로의

함몰 극복 쉽지 않아

 

전수오 작가 ⓒ전수오 작가
전수오 작가 ⓒ전수오 작가

미술 분야 종사자는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제대로 된 미술가라면) 반드시 홀로 작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홀로 하는 예술’에는 함정도 많다. ‘고정된 거처에서 시간상 제약을 받으며 관리자의 감독하에 놓이는’ 여타의 ‘정상적인’ 일에 비해 작업 구상, 재료 준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활동이 대부분인 미술은 거시적 사회제도와의 연결을 잃기 십상이다. 특히 여성작가들의 예술 활동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의 함몰’을 극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술사회학자 앨리손 베인(Alison Bain)은 일찍이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 조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문을 잠글 수 있는 작업실이 있는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수오, 기억에 관하여, 설탕, 조명, 종이, 가변크기, 2016 ⓒ전수오 작가
전수오, 기억에 관하여, 설탕, 조명, 종이, 가변크기, 2016 ⓒ전수오 작가

시를 쓰고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전수오(35) 작가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덧문’을 놓았다. 현재 갓 백일을 넘긴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 3일은 하루 중 4시간 동안 작업시간을 확보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2년째 실천 중이다. 출산 후에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현재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

전 작가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시간이 없는 등 힘든 여건에서 작업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을 줄 수 있는 절대적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에게는 “독서를 하거나, 전시회를 방문한다든지 해서 영감을 얻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 1~2시간은 그저 훌쩍 가버리는 시간”이다. “뭔가 쌓일 수 있고, 계속 감을 잃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 시간은 하루 4시간 홀로 있는 시간”이라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엄마가 되어 아이가 옆에서 울고 있으면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 중 4시간만큼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카페와 같은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서 시를 쓰는 등의 작업활동을 이어간다.

 

전수오, 검은 뿔이 있던 자리, 면실, 흰 자갈, 80x222cm, 2017 ⓒ전수오 작가
전수오, 검은 뿔이 있던 자리, 면실, 흰 자갈, 80x222cm, 2017 ⓒ전수오 작가

전 작가가 ‘하루 4시간’ 규칙을 만들고 지켜오기까지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사실 결혼할 때부터 주변의 시선이 너무 부담됐다 한다. 2015년에 결혼할 당시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이제 결혼하니 작업은 안 하겠네?”라는 말들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도 받고 억울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갖고 있는 재능에 대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왜 스스로를 불신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결혼, 임신, 육아 중에도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했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가족들의 배려가 어느 정도 중요한가에 대해 전 작가는 가정 내에서 작가로서 인정받으려고 ‘투쟁’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말한다. “에너지만 소모되고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작가’가 ‘직업’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창작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작가를 ‘잉여인간’ 취급하기도 하므로, 차라리 애초부터 ‘투쟁’할 필요가 없는,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결혼생활 중 작업의 지속 여부는 배우자의 가치관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전 작가는 “여성작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어떤 차별이나 편견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힘줘 말한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으니 저 작가는 작업을 안 하겠구나’라고 사람들은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고, 해당 여성작가에게 갈 수 있었을 기회를 차단해버리는 상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 작가는, 이런 편견과 그로 인한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육아 생활 중 작업을 지속해가는 여성작가들의 실제적인 삶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수오, 기울어진 막대, 목재, 3x3x135cm, 2015 ⓒ전수오 작가
전수오, 기울어진 막대, 목재, 3x3x135cm, 2015 ⓒ전수오 작가

*전수오 작가

시를 쓰고 설치작업을 한다. 2015년 플레이스 막에서 ‘안녕의 각도’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가진 이래,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벽이 없는 방이 있다’(2016)전, 일년만 미슬관의 ‘브라보 앵콜’(2017) 등에 참여했다. 서울 미술관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을 하기도 했다.

 

필자 정필주는 독립 큐레이터로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예술가 복지, 여성미술, 디지털 미술에 관한 연구를 한다. 국제 예술교류 기획자이자 평론가로서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피해 상담센터 코디네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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