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춘향제’ 시민모니터링

열녀이데올로기와 기녀제도를

남원의 지역문화로 둔갑시켜

관광상품·유희거리 삼아

 

지난 5월 전북 남원에서 열린 ‘춘향제’ 중 전국춘향선발대회 모습. 참가자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문화기획달
지난 5월 전북 남원에서 열린 ‘춘향제’ 중 전국춘향선발대회 모습. 참가자들이 장기자랑을 하고 있다. ⓒ문화기획달

전북 남원에서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춘향제’가 열렸다. 올해로 88회를 맞은 춘향제는 남원의 가장 큰 축제다. 지리산 지역 여성주의 문화단체인 문화기획달은 춘향제를 시민의 눈으로 돌아보기 위해 시민 모니터링단을 꾸렸다.

춘향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시민강좌의 발제를 맡은 김영선씨는 자신이 사는 남원에 크고 작은 지역축제가 많고, 행사에 동원되는 인적, 물적 자원이 막대한 것을 보면서 남원의 가장 큰 축제인 춘향제 모니터링을 계획했다. 도시에서 축제기획을 했던 이력도 지역축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었다.

이번 모니터링의 초점은 춘향제의 부대행사인 ‘전국춘향선발대회’와 ‘신관사또 부임행차’에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상설 문화관광프로그램으로 지정된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4~10월 매주 주말 광한루원에서 펼쳐지는 공연으로 춘향가의 ‘기생점고’를 극화한 퓨전마당극이다. 기생점고는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으로, 새로 부임한 변사또 앞에서 명을 받은 호방이 기생을 한 사람씩 호명하고 선을 보이는 장면이다. 양반들이 즐기던 기녀제도를 마당극으로 재현했다.

바로 이 ‘기생점고’의 진행방식이 ‘전국춘향선발대회’와 그대로 겹쳐진다. 대회는 ‘춘향후보들의 등장-부채춤 공연-자기소개-댄스무대-장기자랑-심층질문-최종선발’로 구성된다. 사회자가 춘향후보들을 차례대로 호명하면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춘향후보들이 장기를 선보이는 과정은 ‘기생점고’ 대목을 미인대회의 형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했다. 사회자의 소개 멘트에는 ‘춘향의 지고지순한 마음’, ‘마음 따뜻한 아가씨’, ‘기분 좋게 만드는 눈웃음’ 등의 표현이 나오고, 춘향후보들의 자기소개에는 ‘이몽룡의 하나뿐인 춘향’, ‘이몽룡과 변사또를 매료시킬 춘향’, ‘오늘밤, 제 이름 불러 주실거죠?’라는 말이 등장한다. 춘향후보들은 단아한 한복을 입고 자기소개를 한 후, 사회자의 진행멘트대로 ‘깜짝 놀랄 만한 반전 매력’을 드러내는 섹시한 의상을 입고 걸그룹 댄스를 선보인다.

춘향의 자질을 점검하는 심층질문 순서에는 ‘얼굴이 못 생긴 춘향이 이도령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이도령이 정말 거지꼴로 돌아온다면?’ ‘변사또가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다면?’ 이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지조와 절개’, ‘변치 않을 사랑’을 약조하는 춘향후보들의 답변이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전국춘향선발대회가 표방하는 춘향은 남자들이 원하는 개념녀, 정숙하게 가리고 섹시하게 벗는 여성이었다.

김영선씨는 “신관사또 부임행차와 전국춘향선발대회를 보면서 기생문화와 룸살롱문화까지 연결되는 지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녀제도가 사라진 게 아니구나, 이게 이렇게 연결돼서 우리 문화로 자리 잡았구나, 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라”며 “21세기에도 우리 고장에서 기생문화를 계속 봐야 하느냐”며 비판했다.

전국춘향선발대회와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여성을 한 남성에게 성적으로 종속시키는 열녀이데올로기와 남성의 성적욕망을 허용하는 기녀제도라는 전근대적인 가치를 남원의 지역문화로 둔갑시켜 관광상품과 대중의 유희거리로 만들었다. ‘여성 친화 도시’로 선정된 남원이 춘향을 소비하는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모니터링단의 발제를 들은 농촌페미니즘 예공공 회원들은 춘향을 사랑의 아이콘으로 설정하고 지조와 절개를 지킨 열녀 이미지로 국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맞서 변사또의 권력형 성범죄에 맞선 미투 발언대나 디스랩 배틀, 안티춘향선발대회, 춘향 프린지 페스티벌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춘향전을 제대로 읽고 비평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춘향을 보여주는 현대적인 패러디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춘향을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다음 발걸음으로 예공공 회원들은 춘향전 낭독모임을 계획했다.

올해로 88회를 맞은 춘향제는 화려하고 수준 높은 국악 및 현대적인 공연이 아름다운 광한루원에서 펼쳐지면서 남원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오감을 만족시켰다. 하지만 그 이면에 여성혐오 문화를 근간으로 유교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춘향선발대회와 기생점고가 따로 또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춘향제전위원회와 외부공연기획단이 적당히 타협하고 서로의 영역을 애써 인정하거나 무시하면서 각자 반쪽의 축제를 만들어간 춘향제는 이질적인 문화의 충돌장이 되었다. 이런 조각난 축제를 춘향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래도 김영선씨는 남원시민으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 고무적이라며 춘향제 모니터링의 소회를 밝혔다.

“서울에서는 내가 너무 작고 미약한 존재인 거 같아서 선뜻 나서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수동적으로 공연이나 축제를 관람하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춘향제 모니터링을 하면서 축제에 푹 빠져 살았어요. 내가 남원시민이구나, 여기 살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지역민으로서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갈 수 있겠다, 이걸 같이 할 사람들이 곁에 있구나, 이런 믿음이 생겨서 내년에는 퍼레이드나 공연 등 어떤 방식으로든 춘향제에 참여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문화기획달은 2014년부터 문화예술 교육과 페미니즘 활동을 펼쳐온 여성주의 문화단체이자 소규모 출판사다. 지리산 여성전용 창작생활공간 ‘살롱드마고’를 거점으로 마을 여성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성교육, 출판·디자인 사업 등을 병행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의 성평등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여성신문사 선정,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수상했다. 문화기획달 블로그(http://mooncult.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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