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1일 시작된 KTX 해고 여승무원의 투쟁은 간접고용에 맞선 싸움인 동시에 성차별에 맞선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직장을 잃고 13년째 거리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이 올 때까지 여성신문은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열차 좋아하던 소녀의 꿈

스물 다섯에 이뤘지만

13년째 ‘복직시위’ 중

 

KTX 해고 여승무원 정연홍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KTX 해고 여승무원 정연홍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연홍(38)씨의 어릴 적 꿈은 ‘기차 타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기차 타는 걸 굉장히 좋아하던 그에게 KTX 승무원 채용 소식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돈도 벌 수 있는 꿈 같은 기회였다. 정씨는 채용 마감 1시간 전에 부랴부랴 지원서를 제출했고, 2005년 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또래 여성 350명과 함께 KTX 1기 승무원으로 채용됐다.

“그저 열차 타는 게 정말 좋았어요. 하루종일 서서 일해도, 힘든 손님을 만나도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로 좋았어요.”

원하던 승무원 일은 즐거웠지만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일을 할수록 이해 안 되는 일이 쌓여갔다. 정씨는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로 바뀌면 승무원들도 코레일 소속이 될 것이라고 입사할 때부터 들었지만, 위탁 계약직 신분은 바뀌지 않았다”며 “나중에는 급여도 삭감됐는데 회사가 제시한 이유를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승무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코레일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정씨는 “그때는 이렇게 오래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회사는 자회사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80명을 정리해고 했다. 정씨는 동료들과 2년을 거리에서 보냈고 2008년부터는 법정 싸움을 이어갔다.

정씨는 당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했다. 무기력은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정씨는 “15층 아파트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한 번에 죽을까’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고 했다. 다행히 1심에 이어 2심까지 승무원이 승소하면서 희망은 커져갔다. 정씨는 그 사이 “사정을 잘 아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마음 한 켠은 늘 KTX로 향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좌절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대법원은 ‘KTX 승무원은 안전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희망은 완전히 꺾였다. 정씨는 “당시에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고 했다. 정씨는 분명히 KTX 근무 시절 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터널 안에서 열차가 멈춘 사고가 발생해 열차가 급정거를 했다. 당시 정씨는 안내방송은 물론 치마 차림에도 팀장과 함께 열차에서 내려 바깥 상황을 살피는 등 승객의 안전을 책임졌다.

정씨의 꿈은 여전히 “KTX에 오르는 일”이다. 지금은 생계 등의 이유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은 “지금 하는 일도 괜찮은데 KTX 승무원에 복직할거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정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복직할 것”이라고 답한다. 정씨는 “우리가 13년을 싸운 이유는 다시 유니폼을 입고 KTX에 오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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