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이자 한국 최초의 여신학 박사인 김신명숙 씨가 최근 책 『여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스트이자 한국 최초의 여신학 박사인 김신명숙 씨가 최근 책 『여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페미니스트·여신학자 김신명숙

10년간 여신문화 연구한 결실

책 『여신을 찾아서』로 펴내

남성중심적 역사 해석 도전

“한국의 강력한 여신 신앙 제대로 활용하면

페미니즘 운동의 든든한 역사적·정신적 자원”

신들의 세계에서 ‘여신’의 자리는 늘 남신 다음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역사에는 위대한 여신들이 존재하나, 남성중심적 가부장제가 도래하면서 남신들에게 밀려났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흔히 ‘여신’ 하면 우리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부터 떠올리지요. 그러나 고대 그리스 이전 선사시대엔 위대한 여신 전통이 있었습니다. 지배와 전쟁으로 점철된 가부장 문화와 달리 여신문화는 평등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전쟁을 모르는 삶, 자연을 경외하며 조화를 이루는 삶을 꽃피웠습니다. 여성은 공동체의 중심에서 존경받았고, 여성의 몸은 신성함의 상징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이자 한국 최초의 여신학 박사인 김신명숙(57)은 지난 10년간 잊혀진 여신들을 찾아 나섰다. 최근 펴낸 책 『여신을 찾아서』(판미동)는 그 결실이다. 그리스 크레타섬 순례에서 만난 여신들과 마고할미, 바리공주, 설문대할망 등 한국의 여신 신앙을 소개하고, 다양한 여신 신앙을 토대로 남성중심적 역사·종교 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독창적 해석도 제시한다.

 

여신학자 김신명숙 씨가 펴낸 『여신을 찾아서』(판미동) ⓒ판미동
여신학자 김신명숙 씨가 펴낸 『여신을 찾아서』(판미동) ⓒ판미동

그가 현대인들에게 낯설기만 한 여신을 강조하는 까닭은, 여신 담론이 억압적·대립적·위계적인 문화를 치유하고 바로잡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마고할미나 설문대할망 등 위대한 여신의 전통이 우리 문화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며 “여신은 여성들에게 억눌리고 은폐된 여성의 힘, 여성 몸의 신성성, 여성의 연대를 선사해 뒤틀린 관계를 치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돕는다”고 했다.

“역사의 수수께끼도 여성과 여신의 관점으로 풀어 보면 새로운 답이 나온다”고 했다. 김 작가는 특히 신라사에 주목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첨성대와 포석정의 정체, 왕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는데 왕비묘에서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관이 나온 점, 화랑 이전의 원화(화랑의 전신으로 귀족 출신의 여성 두 명을 뽑아 단체의 우두머리로 삼고 300여 명의 젊은이를 거느리게 한 제도) 제도 등이 지금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 건 신라사를 남성중심적으로만 조명했기 때문”이라며, “선덕·진덕·진성여왕 등 세 명의 여왕이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여신 신앙을 고려하면 첨성대는 여신상이자 신전으로서 첨성의 기능을 했고, 포석정은 남산여신의 성소였으며, 여신상징으로 장식된 금관 금허리띠는 하늘과 땅과 바다의 여신들을 보증했던 왕권의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성한 여근을 당당하게 과시하고 있는 첨성대는 현재 한국 사회를 향해 ‘여성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지하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작가는 “신성한 여근을 회복하는 것은 여성 몸에 대한 전혀 다른 새로운 인식을 불러오는 것”이라며 “잘못된 성문화, 성폭력, 성희롱 등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에게는 우리 역사 속에 뿌리내린 전통보다 더 강력한 자원은 없다고 본다. 서구 페미니즘 이론이 채워줄 수 없는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줄 것이다. 또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롭고 주체적인 인식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페미니스트이자 한국 최초의 여신학 박사인 김신명숙 씨가 최근 책 『여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스트이자 한국 최초의 여신학 박사인 김신명숙 씨가 최근 책 『여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러나 여신 담론은 개인의 내면에 침잠하고 개인 치유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여신담론이 어떻게 여성운동과 연결될 수 있을까? 김 작가의 답변을 그대로 전한다.

“여신 담론은 결코 현실의 페미니즘을 무시하지 않는다. ‘영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분리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현실의 페미니즘이 꽃나무라면, 나무가 자랄 토대가 되는 게 종교 영성이다. 여성의 몸을 비천하고 음욕의 덩어리로 보도록 만든 게 무엇인지, 만연한 여성혐오가 어디서 나왔는지 추적하다 보면 기존 종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만 봐도 얼마나 가부장적인가. 이런 것들의 영향을 그대로 둔 채,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고 법제도의 변혁을 촉구하는 것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지금의 일(페미니즘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분노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동력이지만, 분노만 거듭하다 보면 황폐해진다.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 존재의 깊은 차원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분노를 성찰하고, ‘모두가 다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눈뜨면 누구나 조금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여신을 만나 임파워(empower)되는 사람들이 많다. 공동체 내에서 여신을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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