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윤서인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24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지난 2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윤서인을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24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아동성폭행범 조두순을 희화화하는 만화를 그려 ‘피해자 우롱’으로 비판받았던 만화가 윤서인(44)이 조두순 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으로부터 고소당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는 지난달 31일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윤씨와 인터넷신문사 ‘미디어펜’을 정보통신망법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하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제출하고,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고 1일 밝혔다.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측은 “성폭력 피해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희화화하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만화가 윤씨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조두순 사건은 2008년 발생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다. 이는 피해자에게 영구 장애를 남겨 전국적 공분을 일으켰다”며 “하지만 당시 법원은 가해자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지난 10년간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출소 후 보복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속해서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윤씨는 ‘조두숭’이라는 인물이 피해자의 집으로 놀러오는 상황을 그리고, 피해자 아버지가 그를 직접 피해자에게 인사시키는 장면을 연출해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이 느끼는 두려움을 희화화했다”며 “이는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만행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해당 만화는 결코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윤씨의 만화는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 피해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가해자의 출소에 대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공포심을 부추기는 등 성폭력 피해 회복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씨는 해당 만화를 통해 피해자 아버지를 ‘웃으면서 딸에게 성폭력 가해자를 대면시키는 인물’로 악의적으로 묘사했다”며 “이로 인해 조두순 사건 이후 반성폭력 운동에 목소리를 높여온 피해자 아버지의 명예는 크게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조두순 희화화’로 논란이 일자 윤서인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과문 ⓒ윤서인 SNS 캡처
‘조두순 희화화’로 논란이 일자 윤서인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과문 ⓒ윤서인 SNS 캡처

이들은 윤씨가 만화에서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린 방식도 문제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윤씨가 묘사한 ‘조두숭’은 피해자를 ‘우리 OO이’라고 부르며 얼굴을 붉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반면 피해자는 벌벌 떨고 있는 뒷모습으로만 묘사돼있다”며 “성폭력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피해자를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하는 표현방식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지난 2월 23일 온라인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이 연재하는 한 컷 만화를 올렸다. 해당 만화에서는 안경을 쓴 중년 남성이 다른 남성을 소개하며 “딸아~ 널 예전에 성폭행했던 조두숭 아저씨 놀려오셨다”라고 말한다. ‘조두숭’이라고 소개된 남성은 “우리 OO이 많이 컸네. 인사 안 하고 뭐하니?”라고 말하고, 뒷모습만 묘사된 딸은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는 “윤서인의 만화는 실존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표현은 사회비판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희화화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성폭력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에 불을 붙이고 성폭력 피해자의 말하기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며 “따라서 해당 만화는 윤씨 개인의 일탈을 넘어 그동안 공고하게 이어져온 ‘강간 문화’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당시 해당 만화가 공개된 후 비판이 들끓었고, 2월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윤서인을 처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윤서인이라는 만화가가 조두순 사건을 인용해 정치상황을 풍자하는 만화를 그렸는데, 아무리 정치 성향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이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관련기사: 윤서인, ‘조두순 묘사 웹툰’ 논란… “처벌해달라” 국민청원 14만 넘어)

논란이 커지자 윤씨는 다음 날인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글을 올렸다. 그는 “제 만화에 ‘조두숭’을 언급한 점, 제 잘못 맞고 피해자의 심정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피해자 및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악인으로 비유해 국민적 경각심을 일으키고자 그린 만화였다. 앞으로는 좀 더 표현에 신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청원에 24만2000여명이 참여하고 이에 대한 청와대 답변이 게시되자 윤씨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누구나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에는 이미 표현의 자유는 없다”고 말해 다시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청와대는 “만화가가 어떤 내용의 만평을 그리느냐는 예술의 자유 영역”이라면서도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 규정과 형법,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명예훼손죄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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