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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혼돈이다. 구약에서 바벨탑을 쌓을때 인간들이 하늘을 찌

를듯이 기고만장하자 야훼가 인간들사이에 말이 통하지 않도록 해버

렸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제대로 일이 진척 안될 수밖에..

재벌과 대기업은 엄연히 다르다. 김대중 차기대통령은 최근 “재벌

은 일본에서 쓰던 용어로 이미지가 좋지 않으므로 대기업으로 바꾸

어 썼으면 좋겠다”고 말한바 있다. 국가 경제위기를 맞아 나라를

결딴낸 주범으로 경제관료와 재벌이 거론됐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재벌해체론까지 나왔던게 사실이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시간문제로

다가와 있다. 우리나라의 명줄을 쥐고 있는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IMF)총재의 요청과는 별개로 이미 재벌의 ‘선단식 경영’은 문어

발식 확장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고사라는 측면에서 비난을 받아왔

다. 스스로 몸을 주체치 못하는 ‘무소불위의 공룡’의 운명은 외채

위기가 닥치기 전에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기로에서 IMF한

파를 맞고 독감정도로도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이를 잘 아는 김 차

기대통령은 지난 13일 4대재벌 총수와의 회동에서 재벌 ‘스스로의

개혁’을 강요한 것이다. 요체는 그룹사간의 결합재무제표 작성과

상호지불보증 해소다. 쉽게 풀이하면 각 그룹의 정확한 재산상태를

공개하고 평균 4배가 넘는 빚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잘 안되

면 총수나 일족의 재산이라도 팔아서 보충하라는 강한 요구다.

차기대통령의 ‘대기업’운운은 말은 부드럽게, 요구는 강하게 하

는 차원인지 모른다. 아니면 재벌은 해체하고 대기업으로 가야한다

는 당위의 계산된 표현인지 모른다. 이와 반대로 노조측에서 반발했

던 ‘정리해고’라는 용어가 정직하다. IMF의 요구가 있고 차기대

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몇번 천명했다. 이전에는

언론과 학자들은 노동자의 반발을 의식해 ‘노동시장의 유연화’

‘노동의 탄력성’ 등의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했다. 결국 노동의 탄

력성은 기업주가 수익성에 따라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더 싼 임금이 있으면 시

간제로도 쓸수 있는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가 명확하다. 지난해만해도 ‘명예퇴직’이라는 법에도 없는 용어가

난무해 사회를 불안하게 했다. 회사에서 짤리는 것보다 돈좀 더받고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심리적인 ‘강제퇴직’이

었다.

한마디로 하면 강압에 의한 해고조치다. 이를 자위조로 ‘명태’라

불렀고 이어 ‘황태’(황당한 퇴직) ‘동퇴’(겨울철의 퇴직)등의

농담이 나왔다. 이제 정리해고가 만연하게 되면 지난해의 명예퇴직

은 정말 ‘명예’가 된다. 집의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변명이 가능했지만 이젠 그것도 안된다. 무능해서 직

장에서 쫓겨난 아빠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공부열심히 해서 1등하라

고 할 수 있겠는가. 사회심리적 공황이 닥쳐올 것이다. 일찌기 프랑

스의 사회학자 뒤르켕이 지적한 ‘사회적 아노미’상태가 된다.

정리해고를 ‘지정퇴직제’라고도 부른다. 어느 광고에 나오는 “꼭

찝어서 말해달라”는 식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장실에서 부르면 기

분좋게 뛰어갔는데 요즘은 겁부터 난다. 목을 강하게 하기위해 넥타

이를 꼭매고 평상시에도 폴라티를 즐겨입는다. 밤새 자리가 날아가

지 안도록 ‘걸쇠’(걸상열쇠)를 해 놓는다. 선배들이 저녁식사를 하

러 나가면서 후배사원에게 “야, 자리좀 지켜라”라고 했더니 벌떡

일어서면서 “누가 제 자리를 치우겠답니까”라고 놀라더라는 식의

우스개소리가 나돌고 있다.

거품경제의 언론사도 서둘러 감면과 방영시간을 줄였다. 노조도 감

원대신에 감봉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것도 모자라 3개월씩 전직

원이 4교대로 무급휴가를 채택한 곳도 있다. 이를 돌려서 ‘재충전

휴가제’라고도 부른다. 말로는 좋지만 봉급쟁이가 당장 쉬면 무얼

먹고 사는가. 건강과 두뇌의 재충전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까

지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

고 있다.

도대체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허약한가. ‘세계11위의 무역규모에

1만달러 국민소득의 부자나라’는 꿈이었던가. 또다시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식인가. 구조조정의 준말이라는 ‘구정’을 전후

해 IMF한파가 실감난다. 음력 새해 토정비결이라도 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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